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캣 Nov 05. 2023

거리두기

Sometimes u just need 2 distance urself


어쩌면 인간관계의 핵심은 거리 두기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단계별 정책이 확실하면 쉬울 텐데 말이다. 타인과의 적정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수학 공식이라도 있다면... 고양이는 그런 하찮은 고민 따위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거리 두기에 관한 최적값을 도출하는 종이다. 그러면에서 인간보다 한수 위다.


고양이는 심플하다. 원하면 다가오고 싫으면 등을 돌린다. 집사든, 처음 만난 사람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집사가 만져주는 익숙한 손길 세 번까지는 만족스럽게 골골거리다가도, 네 번째부터는 거슬린다고 꼬리를 탁탁 칠 수 있다. 그게 다섯 번째일지 여섯 번째일지는 그냥 그때그때 기분이고 마음이다. 그러니 보내오는 신호를 찰떡같이 알아봐야 한다. 눈치 없이 계속 만지면, 고양이 미련 없이 도망간다. 신호를 줘도 못 알아먹으니 스스로 알아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고양이는 기분에 따라 움직인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집사 품에 안겨 꾹꾹이를 하기도 하고, 골골거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일 미터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예 캣타워에 높이 올라가 있기도 한다. 거리 두기의 신이다. 그야말로 자유자재이다.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거나 골골거리며 배를 보여주는 건 더없는 친밀함의 표시다. 일 미터의 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귀찮을 수도 있으니 과하게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다. 캣타워에 아예 올라가 버리는 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건드리지 라냥이다. 가끔은 짖꿎은 집사가 도망 못 가게 끌어안고 있으면, 불만스러운 오토바이 엔진 비슷한 소리를 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더 장난치기도 하지만, 고양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렵하게 도망간다. 애정표현도 확실하고, 거리두기 또한 확실하다. 


기분이 안 좋다는 신호는 분주하게 꼬리를 탁탁 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분노 레벨이 올라가면 귀를 뒤로 젖히거나, 등을 세우기도 한다. 분노의 냥냥펀치도 있고, 심하면 하악질도 한다. 물론 집사에게 이런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마취 풀릴 즈음에 병원에서 릴리가 간호사에게 하악질 하는 걸 처음으로 목격했다. (짠했던 기억이다.) 하악질은 마지막 단계의 경고이다. 더 이상 다가오면 공격을 하겠다는 최종선언이다. 분노 표출에도 고양이는 단계별로 확실하다. 우아하지 않은가.


다가올 때도, 멀어질 때도 고양이는 확실하다. 그런 고양이인간의 눈엔 밀당의 고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고양이는 밀당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치밀하고 계산적인 의도에 관심조차 없다. 고양이는 그저 미련 없이, 사심 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뿐이다. 참으로 철학적인 종이다.


심플하게 살아볼까. 고영희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