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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Dec 03. 2023

고양이가 가르쳐준 것

If you can't avoid it, enjoy it.

집사라서 괴로운 유일한 순간은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순간이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재채기가 연신 나면서, 눈이 미친 듯이 가렵다. 콧물은 닦으면 그만이고, 재채기는 하면 되지만, 눈이 가려운 건  괴롭다. 비벼봤자 더 가렵고, 세수를 해봐도, 인공 눈물도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알레르기 약을 매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로지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다.


고양이 알레르기 2급은 고양이를 만지거나, 고양이가 핥거나 하면 증상이 나타난다. 3급은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바로 재채기를 하면서 증상이 나타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집사는 2급이다. 반전이라면 남편이 3급이다. 3급은 공간분리를 해야 한다. 고양이 알레르기는 키우면서 나중에 생기기도 한다.


이젠 감으로도 알 수 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 기운을. 것이 왔구나. 눈으로만 이뻐했어야 했는데... 내 몸이 거세게 항의한다. 그래도 어떡하냐고. 눈으로만 이뻐하기엔... 정신 차리고 보면 고양이는 냥담요처럼 덮어져 있고 냥털은 날리고 있다. 


쓰담쓰담을 원하는 치명적인 눈빛

알레르기를 버티는 나만의 법이라면 명상이다. 핸드폰 타이머를 스타트에 놓고, 눈을 감고 앉아서 명상자세를 취한다. 아픈 부위에 집중하며 가렵고, 말로 하기 힘든 괴로움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우리의  점프하는 원숭이가 헤집고 다니기라도 하듯, 뭔가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거기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면 집중력은 흐려진다. 명상은 흐트러진 생각에서 호흡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다.


왜 하필 집사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걸까. 알레르기가 꼭 있어야 한다면, 고양이 알레르기만 아니었으면... 가끔은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 맞는 질문을 해야 한다.

'왜 하필'과 같이 마음을 흐리는 생각은 내뱉는 호흡과 함께 날려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 생각들은 도망 못 가게 패키지로 꽁꽁 묶어서 구름처럼 저 하늘에 후~ 날려 보낸다. 호흡과 함께 멀어지는 구름들을 지켜본다. 고양이 세 마리 정도는 키우고 싶었는데...라는 마음의 파도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이런 욕심마저도 그저 흘러 보내야 하는 구름이다.  


일었다가 사라지는 일념에 집착 하면  
내 마음만 괴롭다.


늪에 빠지면 악을 쓸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생각의 늪도 마찬가지다. 을 쓸수록 괴로워진다. 머리로 이해가 되어서 수긍하는 건 제한적이다. 이해가 안 되면 끝까지 괴로울 테니 말이다.


스스로 자신을 놓아줘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흘러가있고, 증상은 흐린 물이 맑아지듯 점차 가라앉는다. 올라오던 알레르기도 파도처럼 내려간다.  괴로움에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정확하게 11분 42초였다. 평소에는 명상을 해도 5분을 버티기 힘들더니. 


 알레르기는 집사를 명상하는 인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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