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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Nov 12. 2023

힘 빼기

I'm not lazy, I'm just very relaxed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고민은 사라지고 질문이 생긴다. 고양이는 부드럽지만 단단하고, 느슨하지만 날카롭다. 모순덩어리가 아닌가. 고양이는 거리두기(제1편 링크)뿐만 아니라 힘 빼기도 마스터. 쉽게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다면 힘 빼기 기능이 고장 났을 수도.


피아노를  때도, 골프 스윙을 할 때도,  빼라고 한다. 손목에  빼라, 팔에 힘 빼라, 몸에 힘 빼라. 심지어 영어 발음 교정할 때에도 힘 빼라고 한다. 공통적으로 근육을 쓰는 일이라서 그런가. 하긴 영어도 입근육을 쓰는 일이긴 하지.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겠지만, 배우는 사람 입장에선 오리무중이기 십상이다. 나름 뺀 것 같은데? 어떻게 더 빼라는 ?


힘 빼기 힘주기보다 어려운 이유는, 스스로 힘이 들어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한껏 들어 올린 팔, 추켜올린 어깨, 잘하려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버린 표정까지, 하나같이 힘이 들어간 상태지만, 정작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힘이 들어간 상태가 습관이 되어버리면 더욱 그렇다. 


결국 힘 빼라는 건 뭘까. 잘하려는 마음의 욕심을 버리라는 건가.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결국 결과만 보는 세상 아닌가.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힘 빼기가 쉬워진다. 고양이 숨결을 따라 호흡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심호흡을 하고 있다. 고양이 자세를 따라 스트레칭만 해도 몸이 개운하다. 우아한 뒤태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멍 때리기에 제격이다. 눈을 감고 골골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명상이 따로 없다. 어느새 몸과 마음은 힘 빼기를 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가르쳐준 힘 빼기는 분주하게 돌아치는 일상으로부터, 본연의 호흡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몸과 마음의 현 상태를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힘을 뺀다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아니다. 생기 없고, 열정이 없는 모습이 아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건 더욱 아니다. 힘 빼기는 경험을 해 봐야 그제야 느슨해졌음을 알 수 있다. 빵빵한 풍선은 하늘거려도 불안하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김 빠진 풍선 역시 볼품없다. 날아오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적절하게 부풀려진 풍선이 예술이다. 힘 빼기의 정석은 비율이다. 


힘 빼기몸으로 말하면, 어느 정도의 이완과 수축이 공존하는 상태이고, 마음으로는 어느 정도의 느슨함과 경계가 공존하는 상태이다. 몸과 마음의 힘 빼기란 역시 어렵다. 힘 빼기의 정석을 알고 싶어서 오늘도 고양이를 유심히 관찰해 본다. 고양이에게는 수축과 이완의 비율이, 느슨함과 경계의 밸런스가, 간이 잘 배인 음식처럼 골고루 어우러져 있다.  


고양이는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소모적인 일에는 별로 관심 없다.  일상이 릴랙스다. 가만히 창가를 지켜보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맛있게 먹거나, 낮잠을 잔다. 강아지처럼 놀아달라고 방방 뛰면서 보채는 일도 없다. 신기한 건, 그렇게 느슨하게 있다가도 창문 밖으로 새가 날아가거나 곤충이 날아오면, 고양이는 순간 사냥 태세로 바뀐다. 동공이 확장되면서 눈빛부터 바뀌고, 자세를 낮추면서 몸도 같이 반응을 한다. 신속하고 정확하다. 공격과 수비의 황금비율을 본능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우아하지 않은가.


고양이는 숨은 고수이다. 힘 빼기의 또 다른 비결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심한 듯 관찰하고, 외부자극에 선택적으로 반응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대개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강아지처럼 주인의 지시를 따르거나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근 어느 연구에서 고양이가 300가지에 가까운 표정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플로르키에비치 교수는 "고양이들의 의사소통은 우리가 이전에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라고 했다.


고양이는  집사가 이름을 부른다고 매번 다가오지 않는다. 개냥이처럼 뛰어올 때도 있도, 눈길만 줄 때도 있고, 뒤태만 보여주면서 귀만 쫑긋거리기도 한다. 자신의 이름을 인지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대놓고 무시하면 무례할 수도 있으니, 모른 척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고양이에게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하여 수동적 반응이 아닌 능동적 반응을 한다.


이쯤 되면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고양이로 변신했다는 설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장르가 판타지 소설이 아닌 에세이기에 뜬금없는 마무리는 사절이다. 바쁜 일상으로 잊고 있었다면 심호흡으로 돌아오는 건 어떨까. 스트레칭으로 지친 몸도 달래보고, 명상으로 흐트러진 내 마음도 들여다보고.


힘 빼고 살아볼까? 고영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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