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서 내리기 위하여

by 달리아

분명 창문을 모두 닫고, 보일러를 틀었는데도 추운 날씨다. 기사에서는 이상기온,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계속 언급된다. 냉기에 몸이 움추러들어서일까. 낯선 단어들이 점점 몸으로, 피부로 체감될 때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미세먼지와 코로나 속에서 매일 마스크를 끼는 일상을 살아가는 어린 두 아이들을 볼 때면 안쓰럽고도, 미안하다. 무엇보다 이처럼 많은 위기 경보 속에도 멈추지 않고 폭주하는 듯한 세상의 모습이, 그 연료가 되는 끝없는 욕망이 무섭다.


최근에는 영화 <설국열차>의 장면들이 종종 떠오른다. 모든 것이 얼어버린 세상 속에서 노아의 방주와 같은 기차를 탄 사람들. 세상의 모습들을 섬뜩하리만큼 잘 비유한 여러 상징들이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기차 칸마다. 전혀 다른 삶의 모습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뒤칸으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 속에서 끼여서 노동하며 겨우 끼니를 때우며 살았고, 앞칸에서는 적은 사람들이 호화로운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어떤 불편함은 현실에서도 느끼곤 하는 것들이었다.




얼마 전 1평당 1억이 넘는다는 지인의 아파트에 초대받았을 때도 그랬다. 대단지 아파트 내에는 폭포와 연못도 있었고, 키즈카페와 골프연습장,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카페와 편의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치열하게 흘러가는 바깥세상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은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카페에 앉아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옆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계신 한 아주머니를 보면서 나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상이 커뮤니티라 불리는 이 시대의 공동체는 돈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계급과 다름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누군가는 그를 뛰어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지만, 그를 유지하고 세습하려고 하는 이들은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처럼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 차이는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 혼자 직장에 다니셔도 집을 사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데 문제가 없었고, 노력하면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몇십 년 만에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매달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고,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의 자리들은 이미 점유되어 있는 것만 같다. 자꾸만 기울어져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미움과 혐오,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은 자꾸만 커지고 있다. 모든 존재들은 마치 그물망처럼 연결되어있기에,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은 결국 내게도 전해질 수밖에 없다. 나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진짜 두려운 것은 모두가 더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동안, 우리 모두를 태운 열차는 돌아올 수 없는 어딘가로 질주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마치 꼬리에 불을 붙이고 자꾸만 더 빠르게 달리는 것만 같은 열차에 탄 사람들은 언젠가는 모두 함께 끝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설국열차>는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남궁민수가 문을 폭발시켜 열차 밖으로 나오게 된 두 아이가 북극곰을 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타고 있는 폭주하는 열차에서 내릴 수 있는 방법, 나아가 열차를 멈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을 구하려 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비교, 경쟁이 아닌 서로를 돌보고 살리는 상생의 길을 일상에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닫힌 눈을, 닫힌 마음을, 닫힌 문을 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를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세상이 더 망가지기 전에, 더 많은 생명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 모두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존중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눈과 마음을 회복해갈 수 있기를.


"깨어있으라"


글을 쓰며 기도를 하다, 문득 올려본 하늘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아, 정신이 번쩍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