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을 팼더니, 우울이 쪼개졌다

by 달리아

우울증이 찾아올 때면 준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 속에 놓인 것처럼 온몸과 마음이 차갑게 굳었다. 그럴 때면 마치 동면에 든 동물들처럼 최소한의 숨만 쉬며 겨우 생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자고, 자고, 또 자도 졸린 날들 속에서 시간과 날짜가 사라졌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체념 증후군의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난민 아이들이 혼수상태로 잠을 자는 것을 보고,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끝없는 잠에도, 나의 깊은 우울에도 원인이 있었다.


잊히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충격적인 순간들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찾아다녔다. 국내외의 명상센터와 여러 심리 치유 프로그램에 이어 상담대학원에서 공부까지 하며 몇 년 간 치열한 여정이 지속되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또다시 너무나 힘든 일들이 겹쳐서 일어났다. 혼자서는 도저히 일상을 지속하기 힘들어 부모님 댁에서 지내다가 어쩌다 인연이 닿아 지리산까지 가게 되었다.


직접 지은 흙집에 구들방을 내주었던 분의 집은 집주인의 느낌처럼 정갈하고, 따뜻했다. 모든 물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만 같은 집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울하고도 멍한 기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인들에게 전해 들은 민간요법- 계란 껍데기에 식초를 넣고 마시는 거였던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까지 해보았지만 속만 쓰리고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인지, 몇 달인 지, 헤아릴 정신도 없이 낮과 밤이 흐르다가 어느 날 구들방에 불을 때기 위해 장작을 패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보았다.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내게, 도끼가 건네 졌다. 도끼는 생각보다 더 묵직해서, 두 손으로 잡고 위로 올려 드는 것만 해도 팔 언저리가 뻐근해졌다. 실로 오랜만에 해보는 낯선 움직임이었다. 몇 번이나 헛도끼질을 하는데, 오래 고장 났던 보일러가 다시 가동된 것처럼 온몸에 다시 열기가 돌고, 살짝 땀까지 났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모아 나무의 중앙을 내리 찍자,


"쩍"


소리를 내며 마른나무 도막이 갈라졌다. 바위처럼 굳어있던 내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울이 통쾌하게 쪼개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몸은 분명히 내게 말했다.


"살고 싶다."


라고.


몸은 내게 지금을 살라고 했다. 과거의 기억들로 무겁게 가득 찬 머리와 삼키지 못한 묵은 감정들로 차있는 마음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감각과 느낌에 충실하라고 했다.


돌아보면, 내가 트라우마 일을 겪었을 때도 여러 감각들을 차단시키고, 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도 몸의 본능이자 지혜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나를 지키고자, 살리고자 했던 몸의 본능과 닿자, 내 안의 설움과 얼음들이 울음으로 녹아내렸다.




그 이후로 날씨가 추워지고, 과거의 힘든 기억이 떠오르고, 우울이 나를 삼키려고 혀를 날름거릴 때면, 나는 도끼를 들고, 힘차게 나무도막을 내려찍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과거의 방으로 나를 잡아끌던 밧줄 같은 것이 툭, 하고 끊어진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의 가족들의 얼굴이, 하늘과 나무가, 개켜야 할 빨랫감이 보인다. 나는 다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숨을 쉬고,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몸의 소리와 움직임에 경이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