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처음 시작된 것은 23살이었다. 처음 우울증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다시는 우울하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능한 다시는 우울의 수렁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 수렁 안에는 출구도 창문도 빛도 없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울은 크고, 작은 파도의 모양으로 내 삶에 밀려왔다. 때때로 우울은 죄책감, 분노, 자책, 번아웃, 수치심이라는 다른 이름과 얼굴을 하고선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그랬기에 나는 오랜 시간 우울의 생김새를 찬찬히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울이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번져가는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찾아오는지, 어떤 색과 형태인지를 기록해 가며 그를 관찰해 왔다. 심리 상담을 받고, 관련 공부 등을 하며 감정은 마음의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는 내 마음이 보내는 S.O.S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치 잎이 시든 나무의 뿌리를 살피듯 그와 연관된 기억이나, 당시에는 차마 소화시킬 수 없어 덮어두었던 트라우마 등을 찬찬히 더듬어 갔다. 그 여정에서 나는
더 깊은 어두움을 찾게 될수록,
더 많은 빛을 발견한다.
는 라이데 에크나의 표현처럼,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더 밝은 빛을 만나왔다. 그 역설이 나를 성장하게 했고, 살아가게 했다.
나는 내 삶에서 우울을 도려내는 대신, 밤과 낮처럼 오고 가는 우울과 기쁨 속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울이 파도처럼 오는 날엔, 마치 서핑보드를 타듯 온몸으로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울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는 충분히 쉬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몸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우울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 하나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자각이었다. 나는 나만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이 아닌 것을 알게되는만큼 우리의 고통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통의 연대 속에서 오랫동안 막혀있던 숨을 내뱉고, 다시 새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나처럼 고통에 갇혀있는 이들을,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은 이들을, 질식한 듯 가쁜 숨을 내쉬며 살아가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내 몸을 내던지지 않은 건,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탱해 주었던 이들 덕분이기도 하다. 의식불명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후로 내 삶은 덤이라 느낀다.
남은 생동안은 내게 전해졌던 온기와 사랑을 전하는 것이 내가 진 수많은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고 서서, 더 크고, 둥글고, 깊은 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여정을 담은 이어지는 글들이 어둠에 갇혀있는 누군가의 가슴에 빛처럼, 밧줄처럼 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