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 Apr 04. 2024

욕조 속의 대게 두 마리

시어머님께서 대게를 보내주셨다.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는데, 웬걸, 대게가 살아있었다. 비좁은 박스 속에서 아이스팩 두 개를 꺼내고 나니, 거품을 물고선 다리를 움직이는 대게 두 마리가 보였다. 가만히 보니 두 눈들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야"


소리를 냈는데, 거실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박스 가까이 다가와선 움직이는 대게를 보았다. 난생처음 가까이에서 보는 대게가 신기한 아이들은 대게의 커다란 집게발을 보고선


"와!"


하고서 감탄의 소리를 낸다. 그러다가 내게 대게를 꺼내달라고 한다. 하지만 집 안에서 가장 큰 그릇을 꺼내 담아도 대게에게는 좁아 보였다.

두 아이들은 더 큰 그릇이 없나 싶어 집 안의 서랍장들을 부지런히 열어본다. 대게를 찜통에 쪄서 저녁상에 올려야 하는 엄마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난감한 마음이 든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첫째가 대뜸 묻는다.


"엄마, 대게 먹을 거야?"


대답이 빨리 안 나와 나도 눈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할머니가 우리 먹으라고 보내신 거야."


라고 할머니 핑계를 대보는데, 말도 체 끝나기 전에 첫째가 뒤집어진다.


"안 돼. 안 먹을 거야. 내 친구야."


몇 분 사이의 눈 맞춤에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는 아예 바닥에 누워 시위하듯 대성통곡을 한다. 내가 어릴 때 고모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는 것을 보고 한동안 닭을 먹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지원군처럼 퇴근한 신랑이 나타났다. 나는 밀리는 경기에서 같은 팀 선수에게 터치를 하듯 신랑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의 감정에 쉽게 동조되는 나와 다르게 신랑은 좀 더 차분하게 공감을 잘하는 편이라 나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람이가 많이 속상하고 슬펐구나.
아빠도 어릴 때 그런 적이 있어."


신랑은 먼저 아이의 슬픔과 속상함을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아이는 대게를 먹지 못하겠다고, 키우거나 살려주고 싶다고 했다. 신랑은 대게가 거의 죽어가고 있어서 바다로 데리고 가는 동안 죽을 가능성이 다고 얘기해 줬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선 욕조에 물을 받아 대게 두 마리를 넣어주었다.

검색까지 해서 온도와 염도를 맞춰보려 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아서, 대게는 욕조 안에서 다리를 조금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이에게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고, 우리가 먹는 고등어나 고기나 풀 등 모든 음식들이 오늘 본 대게처럼 살아있는 생명들로 만든 것이라고, 그러기에 더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아빠와 함께 대게 그림을 그리고, 대게에게 편지를 썼다.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은 순수한 동심, 어린아이의 마음이 담겨있는 글과 그림을 보고 여러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꽤나 요란했던 저녁이 지나 아이들을 재운 뒤, 나는 좋아했던 시 한 편을 오랜만에 찾아 읽었다.

사랑해야 하는 이유 / 문정희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시를 읽고 숨을 고르며 나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느끼고 글을 쓰며 생각들을 정리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이라고 하지만 아직 도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때론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진다. 특히 아이에게 나의 취향과 강요하지 않고, 어떤 것이든 너무 치우치지 않게 균형 있게 전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지구에 태어나 자라나는 존재로서 나와 아이를 바라본다면, 아이에게 나를 비추며 나 또한 더 성장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성장이 햇빛처럼 밝고 따스한 사랑에 닿아있기를, 나 또한 아이와 같은 눈과 마음으로 온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활절 계란과 꽃다발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