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 May 06. 2024

어린이날 다음 어버이날

돌아보면, 나는 결코 좋은 딸은 아니었다. 어릴 때는 몸이 많이 아팠었고, 대학생 는 심한 우울증 때문에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며 떠난 인도 등지에서는 집에 연락도 몇 번 안 드리고, 몇 달간 방랑했었다. 그때 핸드폰 너머 엄마는 내게


"네가 집시가 아니야!"


라고 큰소리로 외쳤더랬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임용고시를 치고 교사가 되었는데, 3년 차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두문분출 국내외를 쏘다니며, 강의를 한다고 보따리장수처럼 돌아다녔으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참 속을 많이 끓일 수밖에 없으셨을 거다.


이처럼 속 썩이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내게 힘든 내색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우울증 때문에 교환학생 도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셨고, 교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반대 대신 응원을 해주셨다. 내게 상담 공부를 제안해주시기도 했고, 어느 날 결혼을 한다고 인사드린 지금의 남편도 그저 환영해 주셨다.


청춘의 시절에는 나의 행복과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크게 느껴졌기에,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었지만, 내가 마흔이 되고, 두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이나마 가늠하게 된다. 두 분이 내게 보여주신 인내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어린이날 연휴를 무사히 잘 보내고, 어버이날을 앞둔 밤, 문득,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아빠가 정색을 하셨던 표정이 떠오른다. 아빠는 워낙 감정표현이 없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는데, 그때만큼 놀란 눈을 크게 뜨신 아빠의 모습은 전에도 후에도 잘 본 적이 없다.


그 다음날인가 아빠는 하루종일 계속 누워만 있던 나를 거의 끌다시피 하여 뒷산에 오르셨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는 '산 위에 앉아 보이는 경치가 다르듯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때 그 말씀보다 내 기억에 더 남은 건, 어릴 적 사고로 아버지를 잃으시고 갖은 고생을 하시며 살아오셨던, 어딘가 외롭고도 의연한 아빠의 옆모습이었다.

@픽사베이

고난과 시련을 견디기 위해 바위처럼 굳었던 아빠의 얼굴과 몸과 마음이 결국 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는 방패이자 보호막이 되어주었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안타깝고 어리석게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듯, 나는 아빠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서야 아빠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깨달았다.


아빠의 사고 이후,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셨을 때 느꼈던 아득한 두려움에 휩쌓였다.  뒤로 몇 번의 수술 등을 거쳐 기적적으로 아빠가 회복하고나서야 나는 일상의 중심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모라는 존재가 내 삶의 뿌리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 뿌리를 더듬어 나의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시작을 알기도 어려운 무한한 사랑과 생명의 강줄기가 내게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픽사베이

첫 아이가 백일 때, 백일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했을 때도 나는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정성과 마음을 다해 상을 차리고 기도해 온 엄마,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들과 연결성을 생생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세포와 DNA에 새겨진 이 지극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생명과 삶을 이어준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본능처럼 흘러 내려오는 그 사랑의 강줄기 소리를 들으며, 부모님께 보내드릴 시 한 편을 찾아 읽는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中


'아버지의 나이'라는 시의 제목처럼, 나는 부모님과 같이 나이를 들어가며 뒤늦게 두 분의 크고도 깊은 사랑을 헤아려본다. 갚을 수 없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적어도 너무 늦어지지는 않게, 자주 연락도 드리고, 작은 마음이라도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게 살아갈 기회를 주시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몇 번이나 살려내신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히 이 생에 함께 해주시기를...나는 진부한 인사말이나마 감사를 전한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오해와 상처를 넘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비를 머금은 아카시아향이 깊고도 고요하게 퍼지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날은 이 정도면 충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