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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여리고, 연약한 몸을 위해

유방암 검사를 하며

by 달리아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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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두었던 유방암과 갑상선 검사를 했다. 유명한 유방전문외과 예약대기는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전에 잡힌 예약 날짜엔, 왠지 모를 두려움에 날짜를 연기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엄마의 유방암 수술로 분리되었던 경험, 그리고 엄마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생긴 두려움이었다. 그 기억은 이번에 쓴 책에도 묘사되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즈음,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 나와 동생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와 외할머니댁에 각각 며칠씩 맡겨졌다.

"이 어린것들을 어찌할꼬!

어느 날 밤, 외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안고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 말에 직감적으로 엄마가 금방이라도 우리 곁을 떠나실 수도 있음을 느꼈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거나 밥그릇에 담긴 밥알을 하나씩 세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다행히 엄마는 몇 주 뒤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후 목욕을 하다가 엄마 한 폭 가습에 새겨진 깊고 긴 상처를 보고서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소중한 사람이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삶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중


그렇게 마주하기 두려운 문제를 덮어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며 지내다가 몇 달 전부터 오른쪽 가슴 윗부분에서 멍울 같은 것이 잡혔다. 유방암 증상 등을 검색해 보며 걱정과 함께 마음이 덜컹거렸다.


잠든 두 아이를 바라볼 때면 괜히 눈물이 났다. 영문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떠나가지 않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며칠 밤을 뒤척이다 예약날인 오늘, 옷을 갈아입고 X-ray 촬영부터 하게 되었다. 아프다고 악명이 높은 검사답게 마치 가슴을 쥐어짜서 스캔을 하는 것만 같은 촬영을 했다.


그 후에는 초음파실에 누워서 유방과 갑상선 초음파를 했다. 갑상선은 작년 겨울에 이상 징후가 있어 다시 검사를 했다. 따뜻하고 미끈한 겔을 바른 뒤, 초음파 기계가 살갗에 닿았다. 작고 어둡고 조용한 초음파실에서 모니터를 한참 살피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깨끗하네요."


라는 첫마디를 건네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쌓인 마음의 둑이 터지는 신호였다.


"지금 멍울로 만져지는 건 종양이 아니고 조직이에요. 그렇게 딱딱하진 않고, 부드러우니 구분도 되고, 걱정 안 해도 돼요."


의사 선생님께서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가셨다. 한 편으로는 안심도 되었지만, 유방암 수술을 받았거나, 현재 치료 중인 가까운 지인과 친구의 얼굴도 떠올랐다.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그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몇 년 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선 얼마 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했던 동생의 얼굴도 떠올랐다.


고여있던 감정들이 흘러나오는 걸 느끼며, 몸과 마음이 병이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잘 회복되고 건강해지기를 기도하며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나 손톱보다 작은 종양에도 우리의 몸이 얼마나 무너지고, 부서지기 쉬운지 다시금 느껴 보았다.


이토록 여리고, 연약한 인간의 몸.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 앞에서 바스러지기 쉬운 마음. 그렇기에 의지할 대상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던 날들을 넘어 만난 평안함. 그 뒤에도 이어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상 속에서 만나는 생각과 감정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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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 안으며 가슴에서 노래처럼 흘러나오는 오래된 기도문.


'배고픈 자는 음식을, 목마른 자는 물을 구하며, 병든 자는 병에서 낫고, 고통받는 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수없이 흘린 눈물과 무너지는 가슴속에서 여러 번 죽고, 다시 거듭나며 내 삶은 하나의 둥글고 커다란 기도로 빚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 어둠을 끌어안은 보름달의 둥글고 환한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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