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은 2006년 첫 인도 여행길, 바라나시의 작은 요가 센터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뿌리가 깊은 한 그루의 나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지혜롭고 깊은 눈을 지닌 그에게서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쉬이 느껴지지 않는 삶의 단단한 중심이 느껴졌다. 그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유머러스하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인 그에게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듣고 나서 함께 밥을 먹으며 아닐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36살의 나이에 길을 떠나 10년이 넘도록 10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해오고 있다고 했다. 여행길을 나서기 전 그는 런던에서 경영학과 회계를 전공한 후 마케팅 일을 했다고 했다. 인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뿌리를 고민하며 진정한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바쁘게 달리던 중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영국에서 살 때 내 주변엔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꽤 잘 나가는 친구들도 있었어. 돈도 많고 유명한 친구들이었지. 하지만 그들은 그 가진 것들 때문에 늘 분주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대부분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어. 많은 부와 명예, 권력을 얻었을 때의 성취감이나 술과 담배, 여자들과 많은 물건들이 그들을 일시적으로 기분 좋게 해 줄지도 몰라. 하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시속 20km로 직장을 오가고, 주말에는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비싼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자유에 대한 값비싼 보상을 받고 만족하며 그것이 행복이라 여기며 삶에는 모순이 있어 보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소비와 소유를 하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건강과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그러다가 그것을 알아채면 결국 값비싼 병원 침대에서 몸을 못 움직이는 때가 되어버리는 거지.
난 적어도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았어.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와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곳을 다니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려 했어. 지금의 나는 많은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전 세계의 수많은 친구들과 늘 함께 하는 기분이 들어. 요즘은 요가와 명상에 집중해서 나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경비를 마련해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그동안 40개 정도의 직업을 가졌었어. 내 인생의 목표는 세계 여행이었기 때문에 직업은 그를 위한 수단이 되었지. 전공이 경제였기 때문에 관련 일도 하고,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많이 가졌었지. 원양 어선을 타고, 아프리카에서 수로도 건설하고, 영화관에서 조명작업도 하고 정말 이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돈을 벌었어. 그렇다고 돈만 벌었던 건 아니야. 원양어선을 탈 때는 몇 달 동안 끝이 없는 태평양 위에서 나 자신과 세상의 무한함을 온몸 가득 체험했고, 아프리카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밤마다 사막에 누워 반구 가득한 별들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알게 되었거든. 지금은 가진 것이 거의 없지만 어쩌면 사실 그것 때문에 나는 가진 것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건지 몰라.”
그의 다양한 인생 얘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만 끄덕이던 나는 나의 이야기도 꺼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자본주의 사회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군요. 사실 나도 자본주의가 싫어요.”
그런 나를 바라보던 아저씨는 내게
“너 시계 참 멋지구나. 아르마니 시계네. 나이키 운동화도 좋아 보이고.”
라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싫다고 하면서 온 몸에 브랜드를 걸치고 있는 나를 지적하는 말이었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급하게 변명을 하려 했으나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
“저도 사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부분에서 점점 혼란스러워져요. 사실 저는 두 가지의 삶을 모두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돈과 명예를 누리면서 사는 삶과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삶이요. 사실 브랜드가 있는 옷을 입었을 때 외출하면 왠지 더 당당해지는 것 같거든요. 저는 참 모순덩어리인 것 같아요.”
말을 마치고 한숨을 내쉬는 나에게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것은 사실 너뿐만 아니라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일 걸! 그러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 나는 감히 어떤 삶이 더 나은지, 아닌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그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잖니. 실제로 돈과 명예로 인해 정말 행복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자본주의에서 돈으로 산 자유와 행복은 환상처럼 느껴졌어. 실제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광고들과 매체는 어떤 물건을 갖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만들고, 당장에 어떤 물건을 가지게 되면 행복할 것처럼 선전하지.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결코 만족하거나 행복할 수 없었어. 있다 해도 잠시였지. 물거품처럼 금방 사라지는 행복이었어. 그래서 자꾸 무엇인가를 더 사게 되면서 어느 날 그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어. 사람들의 끊임없이 소비로 돈이 흘러가고 사회가 유지되고, 사람들은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돈과 명예,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그러다가 자신이 얻은 것들을 잃거나다른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이내 좌절하고. 그 안에서의 나는 내 안의 진짜 자유와 행복을 잃고 사는 것만 같아 나는 그 세계를 떠나온 거지.”
나는 아날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 시간에 배웠던 르네 지라드의 '개인의 욕망은 개인 고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욕망이다.'라는 말과 라깡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원하는 것에 맞춰서 살아가고, 커서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모방하다 보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잊고 사는 것이다. '자본'이 바탕인 세상에서 물질과 돈이 없이 살 수는 없고, 그런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타인에게 휘둘리기보다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삶의 속도와 방향을 보다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아닐과의 대화는 내가 살아왔던 세계나 삶의 방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고, 몇 년 뒤 다시 찾아온 인도에서 다시 만난 그와 나는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 ‘인도병’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인도병’이란 인도라는 나라에 다녀오고 나면, 열병처럼 그 나라가 너무도 그리워진다는 말로 인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이었다.
“아닐, 왜 인도를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인도병에 걸리는 걸까요?”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인도를 처음 여행할 때, 다른 세상에서는 잘 경험하기 어려운 인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겪게 되지. 그런 일 속에서 황당함과 혼란을 느끼는 가운데,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과 직위, 나이, 성별 등 자신이 입고 있는 ‘자아’를 벗고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되는 걸지도 몰라. 그때 우리는 어떤 홀가분한 자유를 느끼게 되는데, 나는 그때부터가 참 중요한 순간이라 느껴져. 인도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때 맛 본 자유의 느낌만을 중시해서 쾌락만을 추구하며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사유하며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나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이처럼 몇 년에 걸친 아닐 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물질과 욕망에 대해서, 그 안에서의 자유와 행복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지나치게 부정하거나 쫒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당함을 알고 균형과 조화를 가졌을 때에 그 안에서 평안함과 행복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아닐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세계 어딘가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해 뻗어나가고 있을 한 그루의 큰 나무 같은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그 당당하고도 힘찬 발걸음과 뒷모습 기억할 때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의 길에 서있는지 돌아보며 소망하게 된다.
내가 나만의 중심과 속도로, 생의 걸음, 걸음을 소중하게 잘 디디며 나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