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산다. 당신은 당신의 길에서만 진짜 당신일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인가. 아니라면 당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라. 그때 당신은 그것이 아주 쉬운 길임을 알게 되리라. 다른 사람으로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지 마라. 당신 자신을 찾아라. 당신 자신이 돼라. 그러면 삶은 아주 간단해진다.
- 레오버스카글리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中
앞선 글에서처럼 여러 강의와 경험들을 통해 죽음을 마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후회 없이 살아야 하는가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직접 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우리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할 때 ‘옷을 벗는다.’라는 표현을 하듯, 직업이라는 것이 옷과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이 곧 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내가 언제든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이라 생각하니 무거웠던 책임감들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것, 그리고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가 삶이라는 무대에서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게 주어지는 일들이 마치 즐거운 놀이나 성장을 위한 수업처럼 느껴졌다. 그런 차원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는가?' 보다 '무엇을 얻고, 느끼며, 배우고 성장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명목으로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나도 사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지만,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라는 고백도 이어졌다. 나 역시 두려움과 고민들이 있었지만, 새롭게 오른 길에서 한동안 글만 쓰며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을 때의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며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환희의 순간,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거나 알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묻고 답할 때마다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에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또한 익숙한 곳을 떠나 여러 낯선 곳들을 다니며, 나는 지구라는 넓은 세계에서는 정말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것, 또 그에 따라서 너무도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의 어딘가에는 아직 사냥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원시부족 사회가 존재하는가 하면,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신들만의 가치관과 기준들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익숙하게는 많은 물질과 빠른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삶도 있다. 공간에 따라, 경제의 발전 속도에 따라 너무도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하루와 한 달, 한 해가 크게 다를 바 없이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곳도 있다.
사람에 따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의 삶이 더 잘 맞을 수도 있고, 자극이 적은 시골의 삶이 더 평온할 수도 있지만 그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물에 살 때 가장 자연스러운 것처럼, 반대로 물속에 있는 새나 물 밖에서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물고기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환경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기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정한 내 안에서 나온 목소리인지, 부모님이나 세상의 목소리를 내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북소리를 들으며 걷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자신 가슴의 북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대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럴 때 삶의 걸음들은 즐거운 춤이 될 수 있겠다 느껴졌다.
이어질 글에서는 내가 만난 이들은 내 가슴 안의 북소리를 듣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사람들과 만남에 대해 나눠보려 한다. 그를 기억하고 전하며, 당신과 내가, 마지못해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삶이 아니라 함께 춤추듯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