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안의 나쁜 사람

by 달리아

어떤 사람에게 깊이 상처받은 적이 있다. 그 상처가 깊어 정신과 상담까지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사람이 내 지인들과는 잘 지내는 모습을 볼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라는 책에서 내 마음을 딱 설명해주는 문장을 만났다.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 뒤로 상담대학원을 다니며 배웠던 대상관계 이론에 관한 책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상관계에서는 우리가 어릴 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어떤 대상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하다가, 그 대상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통합하며 발달한다고 한다. 즉, 좋기만 한 사람이나,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으며, 내게 좋은 사람 안에도 나쁜 측면이, 나쁘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도 좋은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를 통합하지 못할 때 우리는 누군가를 완벽하게 좋은 사람으로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그것이 깨졌을 때 그만큼 더 크게 실망할 수 있다. 20대의 나를 돌아보면, 이러한 통합이 잘 되지 않아 가까운 관계나 사회의 모순적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들었고, 그래서 많이 좌절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고, 세상은 다층적이라는 것을 포용하게 된다. 나를 돌아봐도, 내가 편안하고 기분이 좋을 때와 피곤하고 바쁠 때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다르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천사도 보았다가 그 반대의 모습도 보면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측면들을 가진 다양한 엄마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만나왔던 누군가에게 나는 좋은 추억을 남겨준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상처를 준 나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반된 나의 모습을 수용하는 것에도 꽤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적인 나를 볼수록 모순투성이인 나임에도 인내와 사랑으로 내 삶에 함께해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인연들에 더 감사하게 되고, 무지와 욕심으로 얽혀 상처를 주고받았던 인연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와 용서를 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 안의 좋은 나와 나쁜 나를 어떻게 조절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자인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을 얘기한다. 우리가 항상 완벽할 수는 없지만, 모든 점들을 받아들이며,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자신의 모습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와 연결하여


"우리 안에는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이 있지만, 이를 구분하여,
좋은 씨앗에 물을 주고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


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도 자주 떠오른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나의 일상과 삶은 매우 다른 풍경으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매 순간 마치 마음의 정원사가 되어 좋은 씨앗들에 물을 주고, 나쁜 마음들은 잡초처럼 조심스레 골라내며 모든 일과 관계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최선들이 거름처럼 쌓여 아름답게 피어나는 마음 정원을 그려보며 미소 짓는다. 얼굴 가득 퍼지는 이 기쁨이 오늘 남은 하루동안 내 자신, 그리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향기처럼 전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