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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롭지엥 Oct 31. 2020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 영국어린이집

영국 너서리에서 생긴 일

너서리는(Nursery) 영국의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입니다.

아이들은 만 4세에 공식적인 공교육이 시작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4살 꼬마가 교복을 차려입고 '초등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 영국이야 말로 제대로 된 조기교육을 '공식적'으로 하는구나 싶습니다.


만 3세가 되면 영국 정부에서는 하루 3시간에 해당하는 보육비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보통의 영국 아이들은 너서리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 귀염둥이 둘째도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동네에서 좋다고 소문난) 너서리 등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해맑은 얼굴로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체로 너서리를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즐겁게 너서리를 다니는 아이를 보면서, 안도하고 걱정을 덜려는 찰나

그날 하필 왼쪽 볼에 빨간 상처를 입고 나타나는 아드님.

깜짝 놀라고 속상한 마음이 교차되어, 아이가 교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짜고짜 물어봅니다.


"너 얼굴이 왜 이래, 누가 그랬어? 무슨 일 있었어?"

그 순간 저를 발견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다가왔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어요


그리고는 종이 한 장을 내밉니다.


"이 서명란에 사인을 해주세요. 오늘 오후에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여자아이가 xx(내 아들)의 뺨을 꼬집었어요. 상처는 처치를 했고 설명을 들었으며, 모든 상황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주세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생각이 스칩니다.


1. 우리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선생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

2. "왜" 뺨을 꼬집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3. 도대체 "누가" 그런 것일까?


하지만 선생님은


1.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서 돌보았으며, 아이들끼리 갑자기 일어난 사고라서 방지할 수 없었다.라는 말을 했고

2. 우리 아이가 가진 장난감을 뺏고 싶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내 아이의 뺨을 꼬집었다고 했습니다.

3. 이름도 얼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그 상대방 아이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습니다.


순간 화가 났습니다. 왜 저렇게 당당하게 동의서를 내미는 건지.

왜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건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며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보육했고, 통제 불가능한 사실에 대해서는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제가 원망했던 아이의 선생님은,

지금도 눈물 나게 보고 싶은 너무나 고마운 참 선생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도 종이 한 장을 내밉니다.


" 이 단어 옆에 한국말을 적어주세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선생님이? 깜짝 놀라 선생님이 건네 주신 종이를 읽어 보았습니다.

mum , water, apple, orange, mom will come soon. toilet. sleepy............. 등등


영어를 못하는 아이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선생님이 가장 기본적인 필요한 단어를 나열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영어 단어들 옆에 한국어로 어떤 발음이 나는지, 발음기호를 적어달라고 합니다.

mum   : um-ma (엄마)

apple  : sa gwa  (사과)

toilet  :  shi , eunga  (쉬, 응가)

...............................................


선생님은 그걸 벽에 붙여 놓여 놓고, 아이와 대화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간식 시간에 아이에게 물어보았고 ---> 솨구와(사과)? 무올?(물)

아이가 울고 있으면 --> 옴마 그은방 오올 커야(엄마 금방 올 거야)


비록 서투른 한국 발음이었지만, 영어를 못하는 우리 아이를 위해 한국 발음대로 읽어 주고 그걸 외워서 아이에게 친근감을 준 선생님.


매일 한국말을 하는 선생님 덕분에 같은 반 친구들도 사과를 보면 apple 애플이 아닌 sa gwa 사구와! 하는 귀여운 현상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선생님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지오바니, 이탈리아계 이름을 쓰던 영국 선생님.

너무 보고 싶네요.


그리고 그때 , 너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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