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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롭지엥 Oct 31. 2020

주재원 아내는 꿀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주재원 아내의 허와 실

남편이 영국으로 주재원 발령이 났습니다.

주재원 발령을 앞두고, 해외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몇 년 동안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지인들과 친구들과 송별회를 했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야~ 너는 참 좋겠다, 주재원 아내는 꿀이야~!"


저는 당분간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이별의 슬픔.

무엇보다 해외생활을 시작하면서 저에게 용기를 북돋어 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지인들은 이별의 아쉬움보다는 부러움이 가득한 소리를 해댑니다.


친구 1 : 너는 좋겠다, 주재원 와이프라니, 와! 진짜 좋겠다!

나: 뭐가 좋은데?

친구 2 : 해외생활 부럽잖아, 그리고 주변 해외여행도 자주 갈 수 있고, 애들은 영어도 공짜로 배우잖아.  

친구 3 : 야! 너 다른 나라도 아니고 영국 가잖아! 영국 얼마나 좋겠어! 신사의 나라 영국!

유럽에서 살게 되는 거 아니야!  캬~~ 부러워

마지막으로 다른 친구는 " 나 영국 여행 가면 너희 집에서 재워줘! 약속이야! "


주재원 아내의 자리를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주재원 아내의 자리를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듣고 있으니, 사람이 참 간사하기도 합니다.

해외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을 가지고 있던 제 마음은 어느새 영국행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리 속에서 정작 주재원 와이프를 해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영국으로 발령을 받고 1년이 꼬박 지났습니다.

무더웠던 영국의 여름날, 시댁 식구들이 영국집에 방문했습니다.

시부모님과 시누와 조카는 우리 영국집에서 3주간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30년 만에  최고의 무더위가 찾아왔다는, 유독 덥고 햇빛이 찬란했던 그해 영국의 여름이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와서 3주나 머무른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친한 영국친구도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떻게 '시월드'와 3주를 지낼 수 있냐고 놀랍니다.

'시월드'는 비단 한국 며느리뿐 아니라, 만국 공통의 단어라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3주간의 방문은 저에게 참 많이 위로가 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3주가 지난 후 '시월드'의 가족들이 한국으로 귀국하던 날.

히드로 공항에서 포옹을 하며 헤어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겨우겨우 눈물을 훔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공허함, 차가운 공기.

울음이 터져 나와 고개를 돌려 휴지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의 눈에서도 소리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습니다.


늘 강한 모습. 의젓한 모습의 남편. 그이의 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던 저는 남편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자마자 목놓아 울었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터져 나온 눈물은 그동안의 힘듦과 또다시 찾아 올 외로움이 응축되어 터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이 땅에 우리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또 다시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외로움과 책임감, 이별의 아쉬움, 늘 같이 하고 싶은 가족. 여러 가지 마음이 복합되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처음 목놓아 울었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주재원 아내라는 직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재원 아내의 생활은 제 지인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던 것 처럼

꿀같이 달콤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생각하는 것만큼 멋지지도 않았습니다.


주재원 아내로 취직을 하고 나서야, 이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 직업인지 체감을 했다고나 할까요.


주재원 아내의 자리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자리가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자리입니다.

더욱이 본인의 직장 커리어를 다 접어두고, 남편의 발령 때문에 같이 따라온 경우라면 더 그러하지요.

혹은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요.

저의 친구들이 생각하는 주재원 아내의 이미지처럼 그저 남편 따라 해외생활을 하면서 꿀 같은 생활을 하는 주재원 아내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물론 주재원 가족이 얻는 유익은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 해외생활의 다양한 경험

둘째, 아이들 영어교육의 기회

셋째, 해외 거점을 이용한 주변국으로의 여행기회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유익은 주재원 아내여서 얻는 기회라기보다는 주재원 가족으로써 공통적으로 얻게 되는 유익입니다.

주재원 아내의 자리는 그렇게 달콤한 꿀만으로 정의 내릴 수는 없습니다.

장점이 있는 만큼 그 이면에는 단점, 아니 아픔, 슬픔, 괴로움, 외로움, 치열함 등도 같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나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거든요.


저도 그냥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멋진 해외생활의 핑크빛 로망의 선글라스를 끼고

온 세상을 달콤한 핑크빛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나요?

달콤하고 맛있는 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벌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어쩌면 벌처럼 열심히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모으고, 벌통으로 옮겨오고, 안전하게 지켜내는 과정까지 해내고서야 얻을 수 있는 달콤한 꿀처럼.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꿀 보직이라는 주재원 아내의 자리는

남편에게는 조력자로,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그리고  때로는 흡사 총 들고 전쟁터에 나온 군인처럼

치열하고 냉혹한 해외생활을 버티는 사람으로 무장했을 때 얻어내는 자리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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