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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롭지엥 Oct 31. 2020

말리지 마, 영어 좀 하는 여자야

영국에서 내 영어

영국 가기 전 작별인사에서 친구들, 지인들은 저를 위한 걱정의 한마디를 날립니다.

그 머나먼 영국 땅에서 영어를 하면서 생활하는 게 보통이 아닐 텐데, 할 수 있겠냐고.


나 영어 좀 하는 여자야. 걱정 마, 머 사람 사는 게 어디든 똑같겠지.


자신이 있었어요.

대학교 시절 영어권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마지막 토익점수도 괜찮았습니다.

시댁과 친정의 걱정스러운 염려의 말씀에도 TESOL, 유치원 영어교사 자격증까지 있는 며느리, 딸이라고 걱정 마시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 자신만만했던 저는 그해 가을,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무너집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기 위해 남편은 두꺼운 서류뭉치를 꺼냈고 심사관은 두꺼운 안경 너머로 서류를 꼼꼼히 검토했습니다. 심사관이 갑자기 저를 쳐다보며 질문을 하네요.


심사관: Why you came to UK?       당신은 왜 영국에 왔습니까?

나:................................................(네? 뭐라고요? 당신이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립니다.)


멍하고 서있는 저를 보고, 남편이 당황하면서 저 대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아휴,, 남편 앞에서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네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부채질을 연신 해봐도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남편 말 좀 들을 걸, 영국 영어는 발음이 다르니까 미리 BBC 좀 듣고 공부 해가야 한다고 했을 때도

"나 글로벌하게 외국 친구들 사귀면서 영어 좀 솰라솰라 하는 여자라고! 공부 안 해도 돼!"

말하던 저였습니다.


그렇게 영국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저의 영어 자신감은 무너지게 되었고,  

집 나간 자신감이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습니다.



외계어 영국 영어


저 영국인이 분명히 영어를 하는 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억양이며 톤이며 단어를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꼭 그들이 외계어를 하는 것 같았지요.


Hiya~ You alright?  (하이야~ 유 올라잇?)

아이들 등교 길에 만난 학교 엄마들은 저에게 이렇게 물어요.

내가 배운 인사말은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하와유~ 파인 쌩큐 , 앤드유)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아무도 이렇게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런던 지하철에서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열심히 혀를 굴려

 " Where is an elevator?"하고 물었을 때에도

돌아온 대답은 " what? ah.. lift is over there."였습니다.

엘리베이터와 리프트 사이의 거리감.


미국 영어에 익숙해져 있는 저에게 영국의 영어는 낯설고 어려웠지요.

레스토랑에 가서 물을 시키는데도 어렵네요.

- 나: " Can I have water please?"

            캔 아이 해브 워러 플리즈?

- 웨이터: 워러? 오케이~ 하고 웨이터가 가져온 것은 버터!!!!!


보다 못한 7세 따님이 한마디 합니다.

우~워터 플리즈!

그제야 물을 먹을 수 있었답니다.

워러와 워터의 차이. 최대한 혀를 굴려 연음하여 발음하는 미국영어와 정직한? 발음을 구사하는 영국영어.


이번엔  마트에 갔습니다. 계산을 하려 하는데 점원이 묻습니다.

"Do you want cash back?"   (캐시백을 원하나요?)

순간 한국의 오케이캐시백 포인트가 생각이 났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했지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국 마트의 캐시백 서비스는 마트에서 결재를 하면서 동시에 현금인출까지 가능한 서비스였습니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마트에서 현금인출을 대신해주는 일종의 무료 서비였던 것이지요.


원어민이 아닌 저는

언어로써의 영어뿐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까지 이해해야 하는 배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우와~엄마! 이제는 아이고~ 엄마!


큰아이를 낳았을 때는 엄마표 영어 붐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집안에서도 아이에게 영어로 말하기를 시도했고, 딸 앞에서 영어로 동화를 읽어주고 영어로 자장가를 불러주는 '시대의 흐름을 타는' 엄마였습니다.


어린 딸아이 앞에서 영어를 쏼라쏼라 떠들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엄마를 바라보던 딸이었습니다.


"우와~ 엄마! 엄마는 멋지다, 영어로 말도 하고 진짜 멋있어"

이 한마디에 우쭐해진 엄마였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 오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리미온느의 영국 악센트를 구사하는 우리 딸 앞에서

저는 이제 더 이상 영어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딸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제가 영어로 말을 하면

"우와~ 엄마! 대신에 이제는 아이고~ 엄마!"라는 소리가 나오거든요.


발음이 그게 뭐야,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문장의 오류를 정정해주는 딸 때문에 엄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너 조금 영어 좀 된다고 엄마를 이리 무시해도 되냐고 억울함을 토로해 보지만, 비루한 나의 영국 영어의 발음으로 실제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딸의 도움이 필요하니 조용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하나요.

애들 학교는 어떻게 보내고, 어떻게 먹고 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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