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Oct 09. 2021

남편이 살린 아기 고양이


쿠바 살이 초반이었고 쿠바에서 하려고 했던 일이 좌초되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를 때였다. 당시 살던 집 근처에는 작은 야외 박물관이 하나 있었는데 박물관이라기보다 공원이라고 해야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나도 박물관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래도 명색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보니 아침에 문을 열고 오후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운영 시간 동안에는 지키는 분이 계셨다.


집에서 나와 뭐라도 사러 가거나 어디를 갈라치면 그 앞을 지나는데 지날 때마다 안을 살펴보니 고양이들이 참 많았다. 해가 쨍쨍한 낮에는 다들 어느 나무 그늘 안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다가 쨍쨍함이 사라지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서 걸어 다니거나 아니면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서 졸고 있었다. 늘 같은 고양이들이 보이다가 새로운 고양이가 보이면 무슨 대단한 걸 발견한 것처럼 남편에게 알려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오늘은 새로운 야옹이가 없나?' 하며 살펴보는 게 일이 되었다. 앙증맞은 새끼 고양이라도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구경하고 놀면서 그들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생활이 반복되자 매일 그곳에 가서 한 시간 이상씩 고양이들과 노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침에도 가고 저녁에도 갔다.


남편도 그곳의 고양이들을 예뻐했다. 쿠바의 길거리에는 길고양이들이 아주 많은데 그곳의 고양이들은 다른 길고양이들에 비해서 깨끗하고 자태가 달랐다. 한마디로 품위가 있는 고양이들이었다. 처음에는 볼품없는 아이들도 그곳에 있으면 때깔이 고와졌다.

왼쪽이 남편이 가장 예뻐했던 고양이

알고 보니 밤 11시가 되면 밥솥을 들고 나와 밥을 주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나는 고양이들이 사람이 먹는 '' 먹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고양이는 생선이나 햄 이런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들은 할머니가 주시는 밥을 잘 먹었다. 아마도 먹을 게 없으니  밥도 잘 먹는 것 같았다. 할머니도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참치나 햄을 주고 싶으셨겠지만 할머니가 드실 것도 없었을 테니 할머니에게 최선은 밥을 해 주시는 거였을 테다.


할머니는 이웃 주민이셨다. 오랫동안 밥을 주셔서인지 할머니가 밥솥을 가지고 오시면 고양이들이 떼로 달려가 할머니를 반겼다. 그중에 애교가 넘치는 아이가 있었는데 할머니를 안고 비비고 얼마나 살갑게 하던지 보는 내가 다 감동할 정도였다. 할머니는 이 아이들이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다 기억하고 계셨다. 참 마음이 따뜻하신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애교많은 고양이의 애정표현

그곳의 고양이들과 친해지면서 남편과 나도 저녁에 밥을 주기 시작했다. 낮에는 박물관을 지키는 덩치가 크고 인상이 고약한 쿠바 아주머니(관장님이라고 했다)가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밥을 줄 수가 없었다. 그분은 누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지 모조리 알고 계셨는데 그곳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래서 밥을 주는 모든 이들은 이 관장님 몰래 줘야만 했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건 언제나 남편의 몫이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밥이 아닌 참치캔이나 햄을 주었기 때문에 남편이 저 멀리서 걸어가기 시작하면 벌써 고양이들이 문 밖에 소복이 나와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스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그 냄새를 맡고 대기 중인 것이었다. 그들에게 참치캔이나 햄은 특별식이기 때문에 모두들 두근대며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테다.

밥을 주는 남편과 고양이들

남편이 도착하면 고양이들이 남편 주위를 둘러쌌다. "얘들아 파티하자!"라고 하면서 남편이 참치나 햄을 나누어 주면 그야말로 난리였다. 마릿수가 많아서 가끔씩은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골고루 잘 먹는 것 같았다.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들에게 참치캔이나 햄을 자주 줄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가진 걸 최대한 그들과 나눠 먹으며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남편을 애타게 쳐다보며 밥 달라고 야옹하는 고양이들
남편은 늘 아기 고양이를 먼저 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엄청난 양의 비가 한차례 쏟아졌다. 그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비가 그치고 남편과 고양이들을 보러 갔다. 갑자기 닥친 비바람과 소나기에 걱정이 되어서 확인을 하러 간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비에 홀딱 젖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다른 아이들은 젖지 않았는데 이 아기 고양이만 젖어 있었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걸 보더니 남편이 말했다. "자기 빨리 집에 가서 마른 수건 하나 가져와." 나는 알겠다며 잽싸게 뛰어가서 내가 아끼는 하얀색 수건을 가져왔다. 나도 놀라서 수건을 고를 틈이 없어서 아껴두었던 하얀 수건을 가져간 것이었다.(그때부터 이 수건은 고양이 전용이 되었다)

비에 젖어 떨고있는 아기 고양이

남편이 수건에 아기 고양이를 감싸 안았고 젖은 몸을 닦아 주었다. 아기 고양이도 몹시 지쳤는지 저항하지 않고 남편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하얀색 수건이 곧 황토색이 되어버렸다. 몸을 다 닦고 나자 남편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수건에 감싸서 몸을 닦고 햄을 주었다

"어쩌지, 이대로 두면 오늘 밤을 못 넘길 거 같은데..."

"우리 집에 데려가면 좋은 데 우리는 집에서 동물을 키울 수가 없잖아."


집주인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끼리 동물을 키우지 않을 것을 합의했기 때문에 집에서 어떠한 동물도 키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지라 아기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도 집주인과의 약속 때문에 그러지를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규칙도 중요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해. 일단 오늘 밤에는 우리가 데리고 있자."


남편의 말에 나도 알겠다고 하고는 아기 고양이를 수건에 잘 싸서 우리 집에 몰래 데려왔다. 집에 가자마자 따뜻한 물로 잘 씻겨주었고 다른 마른 수건을 가져와서 닦아 주었다. 그리고는 헤어 드라이기를 가져와 수건에 감싼 채로 멀리서 말려주었더니 따뜻한 바람에 기분이 좋은 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누워서 드라이기 바람을 쐬고 있는 아기 고양이

집에 탈지분유가 있었던지라 탈지분유에 따뜻한 물을 조금 넣어서 주니 아주 잘 먹었다. 다행히 냉장고에 햄이 있었고 그걸 잘게 썰어서 주었더니 맛나게 다 먹었다. 등 따시고 배가 부르니 '야옹'하면서 소리를 내었다. 내가 놀래서 '야옹' 계속하면 쫓겨날지도 모르니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몇 번 하더니 그만 하였다.

우유를 먹고 기운 차린 아기 고양이
야옹!

밤이 늦어 잠을 자야 했기에 옷장에서 작은 트렁크 하나를 꺼내었다. 하룻밤 동안 아기 고양이가 잘 집이 필요하니. 트렁크 바닥에 수건을 몇 개 깔아 따뜻하게 만들어 그 안에 아기 고양이를 놓고는 뚜껑을 살짝 닫았다. 남편이 새벽에 다시 공원에 데려다 놓겠다며 알람을 6시에 맞췄다. 내 옆에 트렁크를 놓아두었는데  아기 고양이와의 첫 합방에 은근 긴장이 되어 잠을 뒤척였다. 그러다 알람이 울렸고 트렁크 안을 보니 아기 고양이가 벌써 잠에서 깨어나 야옹야옹하면서 울고 있었다. 털이 보송보송한 아기 고양이는 아주 예뻤다. 이제 먹고살만해서 그런 건지, 자기가 있던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건지 자꾸만 야옹야옹하길래 남편이 아기 고양이를 공원에 데려다주러 나갔다. 그런데 돌아온 남편이 억울해하며 말을 했다.


"자기, 나 거기 관장님한테 욕먹었어. 내가 고양이를 버리러 온 줄 알고 욕을 막 하는 거야. 그래서 아니라고,  어젯밤에 비를 너무 맞아서 죽을 것 같아서 데려가서 재우고 다시 돌려주러 온 거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욕을 하더라고. 아침부터 무지 욕먹었네."


그래서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 관장님 성질 한번 고약하네. 그래도 자기 덕분에 아기 고양이가 살아났잖아. 자기 엄청 큰 일 한 거야. 한 생명을 살린 거야."


그 말에 남편은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오후에 남편과 외출했다가 박물관을 지나는데 철문 틈새로 얼굴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났다. 아기 고양이였다. 우리에게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을 보여주더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철문 아래로 나와서 얼굴 도장을 찍더니 다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을 보니 고양이들끼리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몸을 맞대로 있었다. 그 마지막 꼭지에 아기 고양이가 쏙 하고 가서 자석처럼 붙으니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하트 모양을 만들어내었다. 하트라니!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야옹!
하트 모양의 고양이들

그날도 바람이 불어서 아기 고양이가 걱정이 되었는데 남편이 살려준 생명이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려 잘 지내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는 아기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예뻐서 누가 데려간 것 같았다. 남편과 말했다. 그가 좋은 주인을 만나서 행복하길 바란다고.


이 아기 고양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여러 마리의 생명을 구했고 그중 한 마리는 내 손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그날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덕분에 쿠바에서 동물 병원도 가 보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동물을 키워 보았다.


그때 남편의 결단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며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남편이 있어 오늘도 감사한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