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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린다 Oct 05. 2021

지금도 고마운 남편의 옛 애인


연애를 시작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숨김이 없어야 한다며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라 안 해도 된다고, 별로 안 듣고 싶다고 했지만 얘기를 해야 자신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한 남편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본인 마음 편해지려고 하는 거라면... 못 이기는 척 들었다. 게다가 남편의 옛 애인이라는 주제는 당연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기에 한번 들어나 보자, 는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었다.


남편이 만 18살이었던 어느 날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여인이 남편을 보았고 남편에게 관심이 있었던 여인이 어찌어찌하다가 먼저 말을 걸었다고 했다. 당시 여인은 만 25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편은 키가 컸던지라 어쩌면 여인은 남편이 그리 어리다고 생각을 못 했을 수 있었을 테다. 아니면 서로의 나이에 민감하지 않은 쿠바인이기에 상관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들은 조금씩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이 남편에게 집주소가 적힌 쪽지 하나를 주었고 그곳에 찾아간 남편은 깜짝 놀라버렸다. 지금까지 가 본 집 중에서 가장 멋진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아바나의 부자동네인 미라마르에 살고 있었다. 미라마르는 아바나의 신도시 같은 곳으로 여기가 쿠바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드 아바나나 센트로 아바나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동네다. 그곳은 마치 미국의 어느 동네 같아서 아바나라기보다는 마이애미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부자 동네답게 깨끗하고 안전해서 대부분의 대사관들과 외국계 회사들도 이 동네에 포진해 있다.


알고 보니 패션 디자이너인 여인어머니가 스위스 금융 부자와 재혼을 해서 그녀는 스위스에 살고 있으면서 쿠바에는 어머니와 함께 삼 개월에 한 번씩 온다고 했다. 여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기억을 못 지만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일을 하는 듯했다. 미라마르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외국에 살면서 그곳에 집을 가지고 있듯이 여인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삼 개월에 한 번씩 쿠바에 오는 여인과 남편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만남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남편은 대학교에서 과대표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교육과 의료가 무상인 쿠바에서는 박사과정까지 학비는 무료지만, 학교를 졸업하는 게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서 생활비도 벌어야 하기에 공부에만 전념을 하려면 가족이나 누군가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남편의 학교는 5년이었고 5년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받아야 졸업을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런 이유로 남편과 함께 입학한 300명 여명의 학생들 중에서 단지 50명 남짓만 졸업했다고 남편이 말했다.  


대학 핸드볼 선수였던 남편은 운동을 하면서 공부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이 남편에게 그녀의 어머니를 소개해 주었고 패션 디자이너인 어머니는 키가 크고 비율이 좋은 남편을 보자 모델을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파트타임 모델 일을 주었다. 일에 대한 대가로 스위스 프랑을 지급했기에 남편은 그 돈으로 생활비를 하며 학교를 잘 다닐 수가 있었다.


스위스에 살면서 교육도 잘 받았고 여행을 많이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었던 남편의 옛 애인은 남편에게 자신이 경험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서 자신이 몰랐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울 수가 있었다. 여인은 꾸준히 쿠바에 왔고 둘이 장거리 연애를 한 지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30살이 된 여인이 남편에게 이제 결혼을 하자고, 그리고 함께 스위스에 가서 살자고 제안을 했다. 남편은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고 23살에 결혼을 하는 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여인의 제안을 조심스레 거절했다. 그녀도 쉽게 프러포즈를 한 건 아니었을 텐데 남편이 거절하자 관계가 멀어지면서 둘은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다. 그녀를 좋아했지만 힘들게 공부한 대학교를 반드시 졸업하리라는 목표가 있었던 남편은 떠나는 여인을 잡지 않았다.


스위스는 내가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완벽하다고 느낀 유일한 나라였고(완벽한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보통의  쿠바 남자였으면 바로 결혼을 했을 터인데 남편이 그 기회를 마다했다는 게 놀라워서 물어보았다. "자기 왜 그랬어? 그녀와 결혼해서 스위스에서 살면 고생도 안 하고 평생 편하게 잘 살 텐데..." 그런 내 말에 남편은 그냥 웃었다. 내가 또 물어보았다. "그럼 내가 행운인가? 자기가 나를 선택했으니까?" 남편은 맞다고 했고 이번에는 둘이 함께 웃었다.






우리 기준에 23살은 결혼하기에 어린 나이가 맞지만 쿠바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23살이면 이미 아빠인 남자들도 많고(여자도 마찬가지) 쿠바에는 우리처럼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딱히 없기에 23살이면 충분히 결혼을 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멋진 그 여인과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녀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할 만큼 사랑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남편도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랬으니까 5년 동안 사귀었던 것인데,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많이 성장할 수 있게 되어 고마워했지만 결혼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쿠바에서는 사랑이 쉬운 경우가 많은데 남편에게는 그렇지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일을 많이 해도 돈 버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똑똑한 청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쿠바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건 내 나라가 싫어서라기 보다 젊고 한창 일 할 때니까, 좀 더 나은 곳에서 성장해보고 싶은 욕구라고나 할까. 그래서 대부분의 청년들은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잡는 게 현실인데 남편은 굴러들어 온 복을 제대로 차 버린 거였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나도 그랬다. 훌륭한 조건의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잘 살고 있는 남자에게 청혼받은 적이 있었다. 그 남자와 결혼하면 내 인생은 그야말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거였는데(그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결국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 남은 내 인생을 함께 할 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인격적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나도 남편처럼 그 남자와 4년 반 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고 그가 청혼했지만 결국 그를 떠나보내었다. 그에 대한 마음이 사랑보다는 존경이었으니.


어쩌면 우리는 둘 다 바보 같다. 잔머리도 못 굴리고 영악하지도 못한 걸 보면. 게다가 우리는 사랑을 믿는다. 순수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일에만 집중하며 살던 남편이 어느 날 나를 보았다. 그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관광객이었다. 나는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닌 데다 파릇파릇 어린 나이도 아니어서 남편이 나의 미모에 반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나를 보았을 때, 저 여자랑 이야기를 꼭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내가 머물던 숙소의 전화번호를 끈질기게 받아내었고 다음 날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내가 연락이 없자 그 시골까지 몇 시간 걸려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영혼이 맑고 순수한 남편은 앞뒤 재지 않고 그저 자신의 영감을 믿고 행동했다.


그런 남편의 힘겨운 노력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나는 남편에게 크게 설레지도 않았고 보고 싶어 미치지도 않았다. 그냥 믿음이 갔다. 떨어져 있어도 1%의 의심이 들지 않았고 마음이 편안했다. 지금은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많이 보고 싶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편의 옛 애인인 그녀에게 참 감사하다. 많이 힘들었을 남편의 학창 시절에 빛과 소금이 되어 남편이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어 남편의 사고를 넓혀주었으니 그녀에게 감사할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멋진 여성을 사귀었던 남편도 더불어 멋져 보인다.


이렇듯 연애한 것도 비슷한 걸 보면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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