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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17. 2022

그래, 장비 탓이었어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5시 반이었다. 새벽에 잠이 들어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꼭 산책을 가야 지하는 마음에 놀라서 눈을 뜬 것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누웠다. 조금만 더 자야지. 하지만 스마트폰을 집어 든 순간 잠은 휘리릭 날아가버리고 시간만 보낼 뿐이었다.


요즘 나의 화두는 What do I want?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하혈을 했던 그날 아침까지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갔다가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루틴이 바뀌고 나니 무언가 휑하니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뚜렷한 목표가 사라지니 자꾸만 무력해지고 나태해지고 또 그런 나를 합리화하며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보며 다른 이들과 비교하게 되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다 정신이 들면 일어나 몸을 움직인다. 그게 꾸준해야 하는  그 순간뿐이다.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 일일. 그러고 보면 작심삼일도 참 대단하다. 삼 일간 같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걸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 삼일만 해보자. 딱 삼일만. 그런 마음으로 그걸 하고 또 하다 보면 무엇 하나는 이루어져 있겠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일요일 아침이라 오랜만에 남산 정상까지 올라왔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다시 아침 산책을 시작했는데, 아직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조금씩 걸었다.  그러다 일요일이라 정상까지 걸었더니 숨은 많이 차지만 아주 괜찮다. 사실, 남산은 산이라기보다는 동네 뒷산 느낌이라 정상이라고 해도 크게 힘들지가 않다.


예전부터 주말 산책할 때에는 책을 가져가 정상에 앉아서 읽고 싶었는데 나의 힙색은 책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크기라는 핑계로 해 보지를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병가를 내고 몸조리하러 본가에 갔을 때 집 앞 백화점에서 세일을 하는 저렴하고 예쁜 힙색이 있길래 하나 샀는데 책을 넣어보니 딱 맞다. 그 힙색에 책 한 권과 우산을 넣고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정상에 와서 한 챕터를 읽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은, '타이탄의 도구들'이다.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을 택한 걸 보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신호일지도. 역시 정신이 깬다.


이제 다시 내려가서 씻고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카페에 가서 남은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돼서 딴짓을 할 것만 같으니까.


구름이 껴서 멀리 보이진 않지만 해가 없어서 눈이 부시지 않고 시원해도 좋은 아침이다. 힙색이라는 장비가 있어 오늘 하루 시작이 좋다. 선수는 장비 탓을 안 한다는데, 난 아직 갈 길이 멀었나 보다.


그나저나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하나씩 적어보면서 원하는 걸 꾸준히 찾아보아야겠다. 나태함은 이제 그만 안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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