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있을 때에는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꾸준히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게 코로나19 기간 동안 내 일과였다. TV에는 채널이 4개밖에 없어서 볼 게 별로 없었고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은 데다 사용료가 비싼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복잡한 걸 싫어하고 단순한 걸 좋아하는 나는 그런 상황에 불만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그걸 즐겼다. 한국어를 모르니 내 글을 남편이 읽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고 나서 이야기를 해주면 남편은 좋아라 했고, 내가 해 주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운동선수 출신인 남편과 함께 하는 운동은 언제나 재밌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것들 중에서 단하나 선택한다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동반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그곳에서는 선택이라는 길목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었고 대신, 그 에너지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에 쏟게 되었다. 인프라가 없다 보니 내 손에 들어온 그 물건을 어떻게 최대한 많이,다양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보는 그런 창의력 말이다. 새로운 걸 스스로 만들어내다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그러다 보니 창의력을 발전시켜나가는 걸 나는 좋아했다.
한국에 왔다.
TV를 켰더니 홈쇼핑 채널이 왜 이리도 많은지. 일단 채널이 너무 많았다. 채널 4개가 전부인 곳에서(케이블 안테나를 달면 더 많이 나오지만) 채널이 100개가 넘는 곳에 왔더니 내 나라인데도 낯선 기분이었다. 2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떠나 있었는데 워낙 빠르게 변하는 한국이다 보니 모든 게 새로웠다.
주식앱을 다운로드하고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유튜브를 하루 종일 시청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자본주의를 등지고 지내온 몇 년이 나를 도태시킨듯한 느낌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잘할까? 할 게 너무 많다 보니 마음은 급해지는 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글을 썼다. 쿠바댁린다인데 쿠바 이야기가 아닌 한국 이야기를 쓰려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가끔만 썼다. 그러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고 2022년에 [어쩌다 쿠바]가 출간되었다. 복잡한 생각 속에서 책을 출간하기 위해 오직 글만 쓰고 퇴고하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행복했다. 다른 생각은 많이 하지 않았으니 그랬을 테다.
다시 일을 시작했고, 정신이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하는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아팠다. 그 핑계로 또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쓸 소재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때 메모라도 해 두었어야 했는데 게으른 탓에 메모조차 하지 않았더니 금세 잊어버렸다.
역시 자본주의에서는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가 일 년이 지났고 계속 이대로 살다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 보낼 것만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계속 생각을 하다가 억지로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쇄 찍은 출간 작가가 아니던가! 명색이 작가인데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내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노트북을 여는 게 힘들지 일단 앉으면 뭐든 생각은 났다.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쓰는 행위가 중요했다. 글을 잘 쓰려면 매일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너무나도 할 게 많고 매일매일 각종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자본주의에서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많은 정보의 홍수 중에서 알게 된 <챌린저스>라는 애플리케이션이 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일전에도 이 앱에 대해서 글을 썼지만 한동안 사용하다가 안 한지가 좀 되었다. 그러다 아프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켰고 일주일에 세 번 글쓰기를 선택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더니 다시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인 것처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내일로 미루게 되었다. 무너진 나를 다잡기 위해서 10만 원을 걸었다. 1주일에 3일 글쓰기를 2주 동안 하는데 100%를 달성하면 내가 걸었던 돈을 돌려받으면서 약간의 상금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이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몰랐는데 이번에 생각해보니 내가 내는 돈을 2주 동안 굴려서 투자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참으로 많다.
챌린저스 덕분에 한 번의 챌린지가 끝나고 지금 2번째 챌린지를 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의지가 강할 때에는 누구보다 강하다가도 무너지면 한없이 무너지는 나이기에 참 고마운 애플리케이션이다. 이제는 챌린지를 한 두 번 하고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모두에게 존경받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몰라줘도 혼자서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오래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핸드폰만 열면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에 자극적인 기사들이 즐비한 와중에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한 가지 일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하는 분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며칠 전 같은 업계에 일하는 언니를 거의 4~5년 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이 언니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경매로 건물을 낙찰받아서 월세를 받는 조물주 위에 있는 건물주이다. 내가 볼 때 언니는 노후 준비도 다 해놓았고 싱글이니 돈을 쓸 가족도 없어서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즐기며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언니보다 더 부자인 분들의 이야기를 하며 부러워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언니, 물질적으로 언니에 비하면 나는 쥐뿔도 없지만 내가 언니보다 더 많이 가진 게 있어. 나는 사랑도 많고 더 많이 행복한 것 같아. 지금은 남편이 옆에 없지만 남편이랑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어도 재미나서 둘이 맨날 낄낄대고 웃거든. 그리고 퇴사 후 4년 동안 돈도 안 벌고 쓰기만 했는데 별로 불안하지도 않았어. 우리 둘이 힘 합치면 뭐라도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언니, 나는 일하면서 계속 글을 쓸 거야. 그리고 언젠가 소설을 꼭 써보고 싶어. 지금은 소설을 쓸만한 능력이 안되지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소설을 쓸 수 있겠지."
말을 하고 좀 놀라웠다. 계획을 하고 말한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어서 나도 내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자청의 욕망의 북카페에서 역행자를 읽는데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생각났다. 행복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나에게는 행복의 에너지가 많으니까 그리고 남편과 함께면 그 에너지가 몇 배가 되니까 우리의 행복한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메모장에 써 보았다. 쿠바댁 린다의 행복론, 행복에 관하여..
지금 이 생각이 금세 사라지지 않도록 챌린저스 애플리케이션을 꾸준히 잘 활용해야지. 그게 습관이 되면 혼자서도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 습관이 오래 이어지면 나의 꿈을 이루게 해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