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오거리에 있는 신흥시장을 갈 때마다 닫혀있는 곳이 있었다. 닭그림이 있는 레트로 한 감성이 뿜어져 나오는 닭집이었는데 늘 닫혀있어서 이 식당도 코로나19로 힘들어서 문을 닫았나 보다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더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동생들이랑 해방촌에서 만나기로 한 날, 해방촌닭을 모임 장소로 정했다.
저녁에 신흥시장에 간 건 처음이었다. 낮에만 갔었는데 저녁에 가니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동생 한 명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말고 손님이 한 테이블 더 있었다. 메뉴판을 달라고 하자 아이패드 같은 걸 주며 사진을 보고 음식을 고르면 된다고 했다. 메뉴는 간소했다. 그곳의 메인은 한방통닭이라고 하여 일단 한 마리를 주문하고는 닭이 나오는 동안 처음 온 손님임을 티 내며 가게 안을 두리번 둘러보았다. 한 남자분이 테이블로 와서 세팅을 해 주었다.
"사장님이세요?"
내가 물었다.
"네, 제가 사장이에요."
그가 대답했다.
"신흥시장 올 때마다 여기 문이 닫혀 있어서 장사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 낮에는 늘 닫나요?"
"아, 여기는 친구 둘이랑 셋이 하는데 셋다 낮에는 직업이 있어서 밤에만 오픈해요."
"우왕, 세컨드 잡이네요. 멋져요 사장님!"
그냥 보기만 해도 개성이 후드득 떨어질듯한 독특한(멋진) 외모의 사장님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저음의 목소리가 성우 뺨칠 정도였다. 그렇게 사장님과 안면을 텄고, 동행한 동생들과 한방 통닭을 맛나게 먹었다. 동생들도 이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사장님이 얼마나 넉살이 좋고 재밌는지 말할 때마다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데 사장님도 사장님이지만, 이 집 닭이 참 맛났다. 기름기를 쫙 뺀 전기구이 통닭인데 닭 안에 들어있는 찹쌀밥과 대추, 인삼까지 모두 맛났다. 게다가 서비스로 준 대파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사람들은 한남동에서 유명한 전기구이 통닭보다 더 맛있다고 하는데 난 그걸 안 먹어봐서 뭐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일요일 저녁에 가서 한방통닭을 처음으로 먹었는데 월요일 오후가 되니 계속 생각이 나서 영업시간을 확인하려고 초록창을 열었는데, '휴무'라고 되어 있었다. 허걱! 너무 먹고 싶은데... 힘들게 하루를 참고 화요일이 되어 해방촌닭에 갔다. 포장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전화해서 물어보니 금방 된다고 해서 슬슬 걸어가 한방 통닭 한 마리를 포장해 왔다. 닭이 크지는 않지만 혼자서 한 마리를 먹는 건 나에게 무리였다. 반을 먹으면 많이 먹는 건데, 하면서 혼자 먹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3분의 2를 먹고는 도저히 들어갈 배가 없어서 그만 먹기로 했다. '나 이런 사람 아닌데 이거 정말 요물이군!' 하고는 남은 닭은 통에 잘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다음부터 심심하면(?) 해방촌닭에 갔는데 사장님과 친해지면서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는 중학교 동창 3명이 모여서 어느 날 각자 한 달에 술값으로 얼마를 쓰는지 얘기하게 되었는데, 그 금액이 꽤나 커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술집을 차리는 게 낫겠다 싶어 차리게 되었다고 했다. 해방촌닭에서는 주류로 생맥주와 한라산 소주를 판매하는데 일하다가도 지인들이 오면 생맥주를 한 잔씩 하는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장님 완전 리스펙!
이야기꾼인 사장님은 다음에 갔을 때에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어쩌다 전기구이 통닭 중고 기계를 아주 저렴하게 구하게 되었고, 그 기계를 둘 곳이 없어서 급하게 지금의 자리를 구해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운도 운이지만 사장님이 아주 스마트한 분이었다. 원래 본인의 직업은 MBC 프리랜서 PD로 돈 되는 일은 다 하며 해방촌닭 말고도 두세 가지 정도의 일이 더 있다고 했다. 요즘 말하는 N 잡러였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와는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장님이 그저 신기했다.
헤어스타일에 복장만 보아도 그가 자유로운 영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해방촌닭에서 일하는 것도 재미있고 다른 일들도 모두 재미있어서 사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즐겁고 재미나게 살고 있는 사장님이 부러웠다. 마냥 놀기만 하는 한량 같이 보이는 사장님은 일을 아주 많이 했다. 낮에는 PD, 밤에는 해방촌닭에서 일하고(세 명의 사장님이 돌아가면서 일함) 새벽에는 작업하며 또 다른 일들은 시간을 조정해가며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모두 자신이 운영하는 일이라 가능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새벽에는 남산을 뛰었다.
해방촌닭 사장님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한 가지 일도 잘하기가 힘든데 저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즐겁게 다 잘 해내는 걸 보며 내 안에 있는 고정관념도 깨우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물씬 들었다.
어쩌다 보니 사장님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매력이 한두 개가 아니라 이즈음에서 끊지 않으면 계속 나올듯하다.
해방촌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마늘 한방통닭. 일단 한방통닭을 둘러싼 마늘소스가 지글지글하는 모습에 입맛이 확 당기고 닭고기를 마늘 소스에 찍어서 한 입 넣으면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기가 막힌 맛이다. 마늘을 좋아하는 나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마늘통닭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함께 간 동생이 마늘통닭을 좋아해서 나도 먹어봤는데 한 번 먹고는 계속 시킬 수밖에 없는 마성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포장으로는 마늘소스의 지글거리는 맛이 살짝 떨어져서 마늘 한방통닭을 먹으려면 해방촌닭에 가서 먹는 게 가장 맛나다는 것이 되겠다.
해방촌닭 메뉴판
마늘 한방통닭
한 가지 여담을 하자면, 사장님이 아토피가 심해서 해방촌닭에는 MSG가 없으며 재료도 엄선해서 사용한다고 했다. 사장님이 메뉴 개발을 하고 먹는 음식이라 재료를 좋은 것 위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이 되겠다.
아프고 나서 해방촌닭에 안 간지가 꽤 되었는데 조만간 가서 또 마늘통닭에 파김치를 먹어야지. 글 쓰다 보니 마늘 한방통닭이 확 당기는데 오늘은 월요일이라 휴무네. 네이버 평점도 훌륭한 해방촌닭. 해방촌에 놀러 오시는 분께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