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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01. 2020

당신과 나 사이 간격 35CM

아이고, 목이야!


남편은 키가 크다. 그런데 다리가 남들 허리에 붙어있다 보니 사람들은 남편을 원래 키보다 더 크게 본다. 게다가 몸에 비해 얼굴은 작다. 일명 9등신이다.


나는 키가 작다. 그런데 고맙게도 사람들이 내 키보다 5센티미터 이상 더 크게 봐준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패션모델이라(모델 놀이를 해 보니 너무 재밌었다) 나의 작은 키가 아쉽긴 하나(키가 아니어도 다른 것 때문에 어차피 힘듦) 이번 생에서는 주어진 키에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성장기도 아닌데 키를 늘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발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예쁜 힐을 신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나는 발 편한 운동화를 신으며 바닥에 붙어서 다녀야 했다. 그나마 하이힐로 커버를 했던 내 키는 더 이상 숨길 데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속상했던 건 힐을 신고 입어야 자태가 제대로 나는 멋진 옷들과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찌 하겠는가? 일단 내 발이 편한 게 우선이니 깔끔하게 포기할 수밖에. 그렇게 살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 나의 키 차이는 35CM



앉아 있을 때에는 괜찮은데 서 있을 때에 포옹을 한다거나 뽀뽀라도 할라치면 남편은 무릎이나 허리를 굽혀야 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쳐'들어야 했다. 그러면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내 입에서는 “아이고, 목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고 내 손은 뒷 목을 잡고 있었다. 그러면 남편은 그런 내가 웃기는지 그럴 때마다 박장대소를 했다. 웃음은 전염된다지. 남편의 그 모습에 나도 함께 넘어갈 듯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렇게 목이 아플 때마다 웃으며 우린 잘 지내왔다. 그런데 내 작은 키가 민망한 때가 다가와 버렸다. 8센티미터 힐 조차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로 결혼식 야외 촬영이었다.






야외 결혼식을 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남들처럼 결혼식 전에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야외 촬영을 하지 않았고 결혼식을 하는 당일에 결혼식 장소에 일찍 도착해 그곳에서 야외 촬영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오후 5시였고 우리는 오후 2시에 그곳에 도착을 했다. 시월 중순이 넘어가는 날이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했다. 저녁에는 오들오들 떨기도 했지만 야외 촬영을 하는 낮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완벽한 날씨였다.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사진사 동생의 요청 아래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결혼식 사진이라 그런지 유독 뽀뽀씬이 많았다. 그런데 사진 촬영용이다 보니 평소처럼 그냥 ‘쪽’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진사 동생이 오케이 할 때까지 서로 입을 대고는 ‘동작 그만’을 해야 했다.


촬영 초반에는 서서 찍는 뽀뽀 씬이 많았는데 전신샷이다 보니 평소처럼 남편이 무릎을 구부리거나 허리를 굽히는 건 안 된다고 했다. 사진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남편은 양다리를 벌려서 키를 낮추거나 한쪽 무릎만 자연스레 살짝 굽혔고 나는 최선을 다해 목을 뒤로 젖혀야 했다. 그러자 내 목은 촬영을 하는 동안 힘이 빡 들어가면서 덜덜 떨렸고 나는 목을 잡을 손이 없어서 “아이고, 목이야” 하며 소리만 질러댔다. 남편은 그런 내가 웃기면서도 안쓰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안 꺾인게 천만 다행(일찍 놀러 온 다른 오빠가 찍어 준 사진들)

뽀뽀 샷뿐만 아니라 둘이 손잡고 걸어가는 전신 샷을 찍는 데에도 키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사진사 동생이 힘들어했다. 키 차이가 적당해야 사진이 이쁜데 한쪽은 너무 길고 한쪽은 쑥 꺼져 버려서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가 봐도 그랬다. 그렇다고 내 키를 갑자기 늘릴 수도 없어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사진사 동생은 발아래 받치는 걸 가져올걸 하면서 아쉬워했다. 원래 동생은 웨딩사진 전문이 아니고 풍경 사진 전문인데 나의 부탁으로 우리 결혼식 사진을 찍어 준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전신샷에서 변화를 주었다. 어딘가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앉아서 찍었다. 보기가 훨씬 좋았다. 그리고 하반신은 자르고 상체만 찍으며 키 차이를 줄여갔다. 그러자 그림이 제대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웨딩 촬영을 마쳤고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키 차이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를 한 껏 받으며 그저 즐겁고 행복하게 그 순간을 맘껏 즐겼다.

훨씬 자연스러운 사진들

지금도 서 있다가 남편한테 안겨 남편을 쳐다보게 되면 자동으로 “아, 목이야”가 나오며 뒷 목을 잡는다. 그러면 남편은 또 웃기다며 깔깔깔 넘어간다. 남편의 웃음에 함께 쳐다보며 우리는 박장대소를 한다. 어느새 생성된 엔도르핀이 잠시 아팠던 내 목을 말끔히 낫게 해 주고 우리 사이에는 사랑만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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