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Oct 14. 2021

마이크만 잡으면 흥이 폭발하는 쿠바 남편  

어쩌면 뼛속까지 한국인 일수도


남편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는 동생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동생은 처음 보는 쿠바 형부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준다며 매콤한 낙지볶음, 부추 고추전, 잡채에 다양한 반찬들과 김치를 준비했고 청국장을 국물 요리로 내어 놓았다. 내가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해서인지 남편도 한국 음식 중에서  된장찌개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때까지 청국장은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청국장도 좋아한다. 요즘에는 냄새가 안 나는 청국장이 있어서 집에서도 해 먹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청국장을 하고 나면 며칠 동안 냄새가 빠지지 않아 고생한 기억에 집에서는 해 먹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청국장을 먹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푸짐한 상차림에 감동한 우리는 잘 먹겠다고 하고는 저녁을 시작했다. 매콤해 보이는 낙지볶음부터 먹어보았다. 맛있었지내가 핸들 할 수 있는 맵기보다 단계가 더 높아서 많이 먹지를 못했다. 그래서 남편도 그러겠지 생각했는데 남편은 맵긴 하지만 맛있다며 밥이랑 함께 잘 먹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청국장은 냄새 때문에 좀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청국장도 슥삭 먹더니 콩 찌꺼기를 하나도 안 남기고 싹 비워버렸다. 모두들 남편에게 한국 사람 아니냐며 엄지 척을 했고 칭찬을 받자 남편은 기분이 좋아 으쓱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개성이 있고 타고난 게 다르지만 나라나 집단마다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게 있어서 우리는 스트레오 타입을 일반화시켜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볼 때, 보통 쿠바 사람이라고 하면 흥이 많아서 춤을 잘 추며 낙천적이고 더운 나라이다 보니 좀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내가 쿠바에서 남편과 살아보고 또 쿠바인들과도 만나보니 남편은 쿠바인 이라기보다는 독일인의 성향을 좀 더 많이 가진 것 같았고 먹을 때 보면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쿠바인들은 흥이라는 게 몸에 장착이 되어 있어서 음악이 나오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자신이 추고 싶은 대로 자연스레 춤을 추는데 나는 남편이 대중들 앞에서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다. 가족 모임을 가도 흥이 많으신 시어머니만 사촌들과 춤을 추시고 남편은 추지 않았다. 남편은 집에서 나랑 춤을 추거나 친한 친구들과만 춤을 추었다. 내가 볼 때에는 춤을 잘 추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밖에서는 춤추는 걸 싫어하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어릴 때 춤을 못 춰서 놀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상한 남편은 그 후로 밖에서는 춤을 추지 않았던 것이었다. 실제로 남편의 사촌들만 봐도 춤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남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동생이 나를 보러 쿠바에 놀러 왔다. 당시에는 멕시코 항공이 운행을 하고 있었고 멕시코 항공은 수하물 두 개가 무료였다.(아쉽게도 코로나19 기간에 멕시코 항공이 파산 신청을 했다) 나의 SNS를 통해서 쿠바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던 동생은 커다란 트렁크 두 개에 물건들을 꽉 채워서 산타가 되어 나타났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예정이었던 동생은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에 수영장에서 타고 놀 튜브도 두 개나 가지고 왔다.


 동생과 남편이랑 셋이 크리스마스에 맞춰 쿠바 최대의 휴양지인 바라데로에 갔고 그곳에서 동생이 언니 선물이라며 블루투스 마이크를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고맙다고 하고는 받았는데 남편이 그걸 보더니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생이 남편에게 작동법을 알려주자 그때부터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래를 한 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혼자 신이 나서 호텔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마치 자신이 슈퍼스타가 된 듯 흉내를 내면서 흥이 폭발해  버렸다. 나와 동생은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했우리의 반응에 더 신이 난 남편은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갔다. 동생은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며 마이크를 선물로 준비했는데 남편이 저렇게나 좋아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도 많이 좋아했다.

호텔방에서 동생이 가져온 튜브에 누워서 열연 중이신 남편

문득 한국에서 노래방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족들과는 가끔 노래방을 가곤 했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은 노래방을 가지 않기 때문에 남편과 노래방을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한 그룹의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갑작스레 노래방에 가게 되었는데 남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남편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괜찮을까 살짝 걱정을 했는데 왠 걸, 남편은 들어가자마자 강남 스타일부터 해서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를 다 따라 부르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처음 본 커다란 쿠바인이 흥에 겨워 몸을 흔들며 노래를 하자 함께 간 일행들도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노래방을 제대로  접수해 버렸다. 평소에는 선비 같던 남편이 노래방을 그렇게나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나는 그저 놀라 신이 난 남편을 구경만 하였다.






평소에 조용하던 남편은 마이크를 잡는 순간 흥이 폭발한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따라 할 수 없는 쿠바인 가능한 그루브가 남편의 어깨에서부터 흘러나온다. 그런 걸 보며 내가 쿠바 사람과 결혼한 게 맞다는 걸 확인하게 다. 가끔씩 집에서 둘이 술 한잔을 하다 보면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마이크 어디 있어?" 마이크를 가져다주면 집에 있는 사이키 조명을 켜고 노래를 시작한다. 마이크를 잡는 순간 남편의 얼굴은 활짝 피고 어깨가 들썩거리며 개구진 표정이 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대충 얼버무리는 데 표정이나 자세는 누가 보면 가수급이다. 남편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었다 잠시 후 프레디 머큐리로 변신한다.

동생이 가져온 장식을 하고 노래를 하는 남편

남편의 마지막 공연이 언제였던가? 내가 없으니 마이크를 꺼낼 일도 없겠지. 다시 남편을 만나면 남편 손에 마이크를 쥐어주고 그동안 참아왔던 회포를 풀어야겠다. 노래를 하면서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대며, 자기~라고 말하면 나도 남편의 장단에 맞추어 멋지게 노래를 해야지. 우리는 흥부부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