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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07. 2021

나는 고구마가 싫어요


오랜만에 햇고구마를 쪄서 먹었더니 또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이 한국에 와서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었을 때 나는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고 결혼을 하면 쿠바에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자 남편이 한국에 있는 6개월 동안 최대한 좋은 걸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매일 건강하고 맛난 음식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간 비싸긴 했지만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해남 고구마를 주문하였고 나는 당연히 운동을 하는 남편이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며칠 후 고구마 한 박스가 배달이 되었고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이 고구마 아주 유명한 거야. 내가 이거 쪄서 줄 테니 같이 먹자. 맛있겠지?"


먹을 걸 보면 아주 좋아하며 표정이 해맑아지는 남편이 고구마를 대하는 태도가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듯한 표정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남편이 말했다.


"자기, 다른 건 다 좋은 데 고구마는 먹고 싶지 않아."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는지 남편은 미안해하며 힘들게 말을 꺼내었다.


"자기 고구마 싫어해? 그런 줄 알았으면 물어보고 주문할 걸... 괜히 많이 시켰네..."


아무거나 잘 먹는 남편이라 고구마도 당연히 좋아하고 잘 먹을 줄 알고 많이 주문한 거였는데 남편이 먹고 싶지 않다고 해서 순간 당황했다. 저 비싼걸... 하면서 속으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다음으로 이제 저걸 누구한테 줄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미안해하던 남편이 또 말했다.


"자기야, 고구마는 쿠바에서 매일 먹었어. 그리고 쿠바에 가면 또 먹을 거라 한국에서는 고구마 말고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남편이 한국에 오기 전 나는 쿠바에서 남편과 두 달 동안 함께 있었지만 그때는 주로 여행을 했지 살림을 한 게 아니어서 남편이 나를 만나기 전에 매일 고구마를 먹었던 걸 몰랐던 것이었다.


갑자기 고 최진실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수제비를 하도 많이 끓여 먹어서 별명이 최수제비였던 최진실은 수제비만 보면 딸꾹질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는 먹을 때마다 최진실이 생각나는데, 남편에게는 고구마가 최진실의 수제비였던 것이다.  






남편이 한국에서 고구마를 먹고 싶지 않다고 했던 이유를 쿠바에 와서 살면서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쿠바의 주식도 밥인데, 한국처럼 찰진 밥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먹는 후 불면 날아가는 찰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밥이다. 그 밥을 먹을 때 곁들이는 음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고구마다.


비안다(Vianda)라고 부르는 밥에 곁들이는 음식에는 고구마, 바나나, 말랑가, 유까, 호박 등이 있는데 집에 있는 재료에 따라서 곁들이는 음식도 그때그때 다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고구마는 먹지 않겠다고 했던 남편이 쿠바에서 매일 먹는 바나나는 한국에서도 끼니때마다 밥과 함께 먹었다. 바나나는 달달하니까 매일 먹었고 고구마는 그렇지 않아서 안 먹겠다고 한 것이었나?

쿠바 현지 식당에서 판매하는 일반적인 식사-흰밥 또는 검정콩밥, 곁들이는 음식(여기는 호박) 그리고 메인(닭다리)

쿠바의 고구마는 한국의 고구마와 비교했을 때 아주 크다. 대부분의 쿠바 채소들이 한국의 것들보다 작은데 유독 큰 채소들이 있다. 고구마, 가지 그리고 오이. 어릴 때 가지를 먹다가 심하게 체한 적이 있어서 그 후로 가지를 먹지 않았는데 쿠바에 야채의 종류가 많지 않아 된장에 가지를 넣어본 적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서 받은 들기름에 가지를 볶아서 먹어보았는데 맛있었다. 어린 시절 이후 입에도 안 대던 가지를 쿠바에서 다시 먹기 시작했다.

왼쪽 상단 좌-가지(위에는 망고), 우-오이, 아래 오른쪽-큼직한 고구마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 건지 사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과일이든 채소든 같은 거면 한국 것이 확실히 맛있다. 고구마도 마찬가지다. 한국 고구마 크기의 몇 배가 되는 고구마를 삶아서 먹어보면 한국의 고구마와 같은 단 맛은 별로 나지 않고 그냥 먹을 만한 고구마 맛이다. 그래서 고구마를 삶을 때 설탕을 조금 넣어서 삶았더니 남편이 맛있다며 잘 먹었다.


남편이 평생을 먹어왔던 고구마가 코로나19로 인해서 시장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시장에 나와서 남편이 고구마를 먹고 있지만 아마 다시 한국에 오면 고구마는 먹지 않겠지. 갑자기 쿠바에서 고구마 맛탕을 해 먹었던 게 생각난다. 남편도 맛탕은 맛있다며 잘 먹었는데. 달달한 걸로 포장을 하면 남편이 고구마를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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