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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May 05. 2022

너무 오래 살아 버렸다.

220505

죽겠다.


아무리 자도 피로가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몸에 힘이 없다. 오직 승모근에만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내 승모근은 더 이상 나의 지배를 받지 않는지, 힘을 풀려고 해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막힌 코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콧물이 찔끔 나오고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일어설 때나 앉을 때 ‘아구구구’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내가 아무리 몸이 안 좋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다 이유가 있다. 먼저, 빌어먹을 꽃가루 때문이다. 요즘처럼 콧구멍에 봄바람이 살랑이면 죽음의 알레르기가 찾아온다. 증상으로는 먼저, 콧물을 멈출 수 없다. 눈물도 마찬가지. 눈은 가렵지만 결코 비빌 수 없다. 눈을 비비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 눈을 비비고 나면 잠시 괜찮다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렵다 못해 따가워진다. 눈물은 펑펑 난다. 피가 날 듯 붉게 충혈도 된다. 봄이면 항상 나는 콧물 찔찔이에 시뻘건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된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산 송장이다.


이래서 안 그래도 산송장 모드인데, 근래 야근은 넘쳐난다. 세상에 야근 좋아하는 사람 누가 있을까? 다행히 우리 회사는 ‘죽어도 야근은 하지 말자’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클라이언트 덕분에 풀 야근 중이다. 계약서에는 별 문제없다며 도장도 쾅 찍어 놓고는, 지금 와서는 사사건건 다 트집 놓는다.


여기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두 가지. 첫 번째는 계약서 대로는 문제없으니 저희는 모르겠습니다~라고 싸우거나, 우리가 멍멍이고생을 하면서 다 들어주는 거다. 결국 동네 힘센 사람인 클라이언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갈려 나가기로 결정되었다. 이주 동안 철저하게 갈렸다. 이렇게도 곱게 갈릴 수 없었다.


그렇게 지구로부터 일로부터 제대로 괴롭힘 받았다. ‘힘들다’ ‘피곤하다’는 말이 숨 쉬듯 눈 깜빡이듯 나온다. 송장처럼 침대에 꼼작 없이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 그래도 이 정도로 허약하지 않았었는데.’


소싯적에는 친구들과 밤새 피시방에서 놀고 다음날에 또 피시방에서 밤샘했었는데. 닭장 같은 비행기 안에서 40시간 동안 몸을 구겨 넣고 있어도, 도착하면 잘만 여행 다녔는데. 이제 법적으로 만 나이를 써도, 앞자리 숫자가 3이 되어 버린 나의 나이가 되니 더 이상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몸 어느 한쪽이 영구적으로 고장 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몸이 영구적으로 고장 나는 게, 바로 나이 들어가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실제로 나는 꽤 오래 살았지 않은가. 이걸 보고, ‘아니! 아직 그 나이로 오래 살았다니!’라고 말할 사람이 많다는 거 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말고 좀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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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평균 수명은 83.5세라고 한다. 그래선지 다들 80살은 기본으로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몸 관리를 잘한다면 100살까지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당연하게도 오래되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인류의 시작을 240만 년 전으로 본다. (240만 년이라는 엄청난 역사에 비해) 굉장히 최근 바로 얼마 직전, 19세기까지는 인간의 평균 수명은 40살을 넘지 않았다. 물론 이 40살은 통계의 오류를 품고 있다. 19세기 이전까지 유아 사망률이 굉장히 높았으며, 지금과 다른 위생 관념으로 인해 지금은 죽지 않을 간단한 감염으로 인해 죽기도 했다. 물론 끊이지 않던 전쟁사도 한몫한다.


하지만 최근 DNA와 수명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 (나도 잘 모르지만 지식의 근원, 구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후성유전학에 의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DNA가 메틸화 되는데, 이 메틸화가 일어나는 CpG라는 곳의 밀도와 그 DNA의 생물의 수명 간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의 자연 수명과 이 CpG의 밀도로 계산한 수명이 유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로 계산한 사람의 수명은 19세기까지의 사람 수명과 유사한, 38세 정도로 나온다는 거다.


조선시대 왕의 평균 나이는 약 46세. 탄단지, 미네랄이 풍부한 산해 진미를 먹고, 그 당시 최고의 의료를 받을 수 있던 왕조차 오래 살지 못했다. 양반들도 45세를 넘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평민은 35세. 환갑잔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도 평균 수명은 50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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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의 생각은 그거다. 나이 30도 충분히 인류사적으로 많은 나이다. 그렇기에 지금 느끼는, 20대 때와는 다른 나의 몸 컨디션은 당연한 거다. 아무리 비싼 핸드폰도 자동차도 노트북도 시간이 지나면 고장 난다. 2년 쓰면 오래 쓴 거라고 한다. 그런데 나의 몸은 20년 30년 쓰고도 오래 썼다고 생각 안 하는 걸까?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한 이후로 30년 넘도록 단 10초도 쉬어본 적 없다.


그리고 위생, 의학 덕분에, 아니 때문에 너어어무 오래 살게 되었다. 오히려, 긴 수명은 각자 오래 살고자, 잃기 싫고자 하는 욕심으로 만든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옛날 5-60살이면 죽던 시절에는 노후라는 개념이 없었다. 내 몸 힘써 일하다, 일 하기 힘들어지는 노인이 되면 죽었다. 나중에 은퇴한 후의 삶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노후 걱정으로 돈을 쌓아둘 필요도 더욱이 없었다. 어쩌다 운 좋게 오래 살아남은 노인들은 현인으로 추대받았다. 그 당시 노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기에 더 지혜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노인은 다르다. 대다수 50대, 이르게는 40대에도 은퇴하는 세상. 너무 빠르게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세상. 과거에는 이미 죽을 나이였지만, 이제는 살아갈 날이 50년은 더 남았다. 더 이상 2-30대처럼 열심히 돈 벌 몸뚱이도 없다. 미래 걱정은 쌓여간다. 막막하다. 그래서 요즘 노인들이 무서운 거다. 혐오와 미움을 일삼는 사람은 다 스스로가 불안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몇몇 노인들이 세상을 1번과 2번으로 나누고 미워하는 거다. 낯선 외국인 노동자나,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거다. 다 불안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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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렇다. 내 나이는 인류사적으로 늙었다. 꺾였다. 그래서 조금 고생해도 몸이 아프다.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거다. 절대 나의 운동부족이거나 잘못된 식습관 때문은 결코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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