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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실은통한다 Jul 19. 2020

청춘의 냄새

2019년은 영화 <기생충>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난 임신 중이었는데, 잔인한 장면을 보는 것이 부담돼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영화가 개봉했던 지난해 여름, 주변에서 온통 <기생충> 이야기뿐이었고 난 스포 당하지 않기 위해 남모를 노력을 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드디어 <기생충>을 보았다.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한 영화였다. 지하실 장면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영화를 보고 놀란 건 바로, 화면 안에 ‘냄새’까지 담아낸 디테일한 연출력이었다.

펜트하우스 같은 고층에서만 살아서 반지하 냄새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 영화를 보고 있다면 퀴퀴하면서 쿰쿰한 그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런 눅눅한 냄새는 누구나 좋아하지 않지만, 나에게 그것은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스물일곱 살 무렵부터 나는 합정역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합정역 2번 출구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아늑한 골목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숨겨진 예쁜 카페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핫플레이스 ‘홍대’를 지척에 두고 있어서인지, 밤이 되면 동네에는 젊은 공기가 가득했다. 우리 집에서 도보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보니, 마치 내가 태생이 ‘홍대人’인 것처럼 매일이 파티였다. 그렇게 놀다가 새벽녘, 집으로 걸어오면서 도심의 회색빛 밤하늘을 눈에 한가득 담았다.  

골목을 커피 향기로 물들이던 카페 건너편, 빨간 벽돌집에서 계단 7-8개를 내려가면 ‘B01호’ 나만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반지하라도 방과 주방, 화장실이 완벽 분리돼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드는 구조였다.

부엌 창문에서는 주차한 자동차의 바퀴가 보였고, 방 창문을 열면, 또각또각 사람들의 발걸음이 내 머리를 지나다녔기에  웬만하면 커튼을 걷을 수 없는 곳, 그래서 환기도 잘 안 되는 곳,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 공간을 사랑했다.

어둑한 방, 작은 밥상을 펼쳐 퇴길 길에 포장마차에서 산 닭똥집을 뜯고 맥주 한 캔을 마신다. 내가 좋아하는 FM107.7을 켜고, 노란빛 전등 하나 의지해 글도 쓴다. 이불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니, 벽에서 뿜어지는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살짝 찌른다. 그날의 분위기가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렇게 내 청춘은 언제나 반지하 냄새와 함께였다.


그때만큼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적이 또 있을까.  그런 시간을 보냈음에 감사할 뿐이다.


소중한 것은 스쳐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들이다
언젠가는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필사 /  소설가 김연수도 정릉 산꼭대기, 쓰레기로 가득했던 좁은 자취방에서의 시절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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