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김심야와 손대현의 [Moonshine]에 빠져 있을 무렵,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BANATV로 이끌었다. 그 중 내 눈길을 끌었던 제목이 있었는데, 바로 [뽕을 찾아서]였다. [뽕을 찾아서]는 250이라는 프로듀서가 말 그대로 뽕(짝)이라는 장르의 어떤 근원적인 무언가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댄스 음악에 대한 관심도 그리 크지 않았고, 자의/타의로 '프로듀서'라고 이름 붙은 사람들이 어느 범위까지 작업을 하는지도 잘 몰랐기에, 그다지 진지하게 이 시리즈를 시청하진 않았다.
그러다 250의 싱글 <이창>이 발매된 후,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익숙한듯 이질적인 박자와 멜로디. 계속해서 반복되는 '좋아좋아좋아좋아' 샘플링. 메인 멜로디가 마치 옷을 갈아입듯 여러 가지 사운드로 변주되며 곡의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곡에서 느껴지는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뮤직비디오도 일품이다.
<이창>의 발매 이후 다시 본 [뽕을 찾아서]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다큐멘터리였다. 이정도로 신선하게 느낀 영상은 손에 꼽는다.
250의 뽕을 찾는 여정은 2018년 3화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4화가 나왔다. 그전까지 휴게소에 들러 테이프를 구매하거나 사교댄스를 배우는 등 개인적인 차원에서 뽕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겼던 것과 달리, 이번 4화에서 250은 전문가(?)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장인(?)을 찾아뵈어 가르침을 전수받기도 한다.
이번 4화에서, 그가 중간중간 말하는 부분들을 듣다보면 250이 뽕을 얼마나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정말 제대로 느껴진다. 하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보다 깊고 넓은 저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를 깨달은 뒤, 뽕을 '진짜'로 구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고민하는 태도가 내 심장까지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번 영상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1. 뽕삘
발라드를 들었을 때도 느껴지는 어떤 그 '뽕삘'. 그걸 찾아서 나머지 요소들은 걷어내고 그 순수한 '뽕삘'만 남겨둔 다음, 거꾸로 그 순수 '뽕삘'에 이런 저런 요소들을 더하여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뽕으로 음악을 만들겠다는, 어찌보면 황당한 생각에 이런 논리가 더해지니 설득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2. 외국 사람들에겐 신선하고 우리에겐 친숙한 것
몇 년 전에 친구와 서울소리라는 프로젝트성 전시/강연/공연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판소리, 민요, 국악 등에서 차용한 샘플링 요소를 활용하여 현대식으로 (조금 러프하게 얘기해보자면 서양식-전자 음악의 형식으로) 신선하게 재해석 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공연을 보고 나온 후에도 그 '한국적인 것을 오늘 날의 문법으로 재해석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그 프로젝트의 취지에 설득될만한 결과물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번 영상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민요나 국악은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것은 맞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에겐 신선한 것이기도 하다. 민요나 국악을 친숙하다거나 익숙하다거나 진부하다고 할 정도로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날치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은 신선함을 무기로 유행을 이끌 수 있었다. 다만 이것을 현대식으로 신선하게 재해석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 생각에 이는 성립이 안 되는것 같다. (이날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판소리라는 장르를 현대로 가져온 것이 신선해서였지, 판소리를 베이스와 드럼으로 연주함으로써 판소리를 다른 장르로 재해석한다는 것이 신선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해석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사실.) 애초에 우리한테 그렇게 친숙하지 않은 걸 가지고 신선하게 현대식으로 재해석할 순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신선하게 풀어내려면 진부한 것이 필요하다.
뽕은 어떨까? 우선 민요나 국악만큼 순수하진 않지만 뽕 역시 우리 고유의 것(민요의 떠는 창법이나 '한'의 정서 등)이라고 할만한 요소가 들어있다. 따라서 서울소리 프로젝트가 바랐던 '전통의 의미를 확장'하고자 하는 취지에 부합한다. 그리고 핵심적으로, 뽕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숙해서 촌스럽게 느껴질만큼 진부하다.
그런데 왜 뽕을 가지고 아무도 이런 작업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이런 시도가 전무했던 건 아니다. 1998년 달파란은 [휘파람 별]에서 이박사 스타일의 샘플링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하지만 <이창>처럼 그 색채가 온전히 드러나진 않는다. 여기서 추측건대, 뽕은 그 색채가 너무 강해서 그 자체의 색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기가 어렵고, 재해석한다고 한들 그 느낌(뽕삘)이 요즘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휘파람 별]에서처럼 가벼운 샘플링 형식으로밖에 쓸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와 별개로 유튜브 '달파란 휘파람 별'을 검색하면 풀 앨범을 들을 수 있다. 아주 좋은 음악이다.)
<이창>은, 아니 250은, 서울소리 프로젝트가 실패한 '전통의 의미를 확장'하자는 목표를 해낼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에겐 신선하면서도, 국악이나 민요보다 재밌기 때문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국악이나 민요보다 더 친숙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댄스 음악(전자 음악)의 요소 덕분에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모두 250이 뽕의 색채와 댄스 음악의 색채를 아주 쌔끈하게 비벼낸 덕분에 생긴 가능성이다.
[뽕을 찾아서 4화]를 보아하니 머지 않은 미래에 앨범이 나올 모양이다. 영상을 보니 이박사 선생님과 김수일 선생님과 [아기공룡 둘리]의 OST를 부르신 오승원 선생님이 피쳐링으로 참여하신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조만간 검정치마 신보도 예정되어 있는데, 가능하면 흐름 끊기지 않게 나오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