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사는 아빠를 따라 나선 결과
회사원인 우리 아빠는 몇 년째 토요일 새벽마다 집 앞 산에 오르신다. 집 앞에 있는 산이지만 뒷동산 정도는 아니고, 나름 해발 440m로 난이도 ‘중’ 정도의 산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빠, 나도 내일 6시에 깨워줘!
직장생활에 허덕여보고서야 토요일 아침에 무언가를 하는 아빠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50대 후반인 우리 아빠도 갓생 사시는데, 20대인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갓생러를 눈앞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듯 어느 토요일 아침, 아빠를 따라 산으로 향했다.
벚꽃이 막 지고, 산에는 진달래들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었다. 아빠는 자고로 꽃은 이렇게 길목마다 잊어버릴 때쯤 한 번씩 나타나줘야 한다고 했다. 벚꽃축제나 철쭉축제처럼 왕창 핀 곳들은 결국 금방 질려 버린다고.
아빠의 다양한 자연이야기를 듣는 중간중간에, 숨이 가빠왔다. 정상으로 가는 여러 코스 중 빠르게 갈 수 있는 힘든 코스로 가는 중이었던지라 암벽등반 수준의 가파른 길이 많았던 것.
체력왕 아빠는 느리게 갈지언정, 절대 멈추지 말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쉬었다 가면 더 힘들다는 잔소리가 들리지 않은 딸내미는 기어이 진달래나무 앞에 멈춰서 에너지바를 우걱우걱 먹었다.
산의 정상에 도착하기 300m 전부터는 큰 바위가 3개 등장하는데, 마지막 세 번째 바위에는 한자로 ‘대견’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대형견 아님)
여기까지 올라와줘서 대견하다는 뜻일까? 먼저 올라온 누군가가 자기도 힘든 와중에 나중에 올라올 사람을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손수 적는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 바위와 중간중간 나뭇가지에 묶여있던 손수건을 보며 산은 생각보다 친절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1시간여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본투비 산을 싫어했던 나는 오랜만에 보는 능선에 대고 심호흡을 열 번 정도 했다.
산의 초입에서는 눈앞이 하얘질 만큼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제 호흡을 찾고 나니 매주 오고 싶어졌다.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올라오니 누군가는 대견하다고 말을 건네주고, 바람은 땀을 말려주고, 아빠는 사진을 찍어준다. 게다가 아직도 주말이 1.75일이나 남아있다는 사실까지,, 완벽하다!
오를 때는 2km 조금 넘는 거리가 1시간 20여분이 걸렸는데, 하산할 때는 30분 만에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도 가팔라서 나무를 짚으며 왔는데, 아빠 왈 소나무에는 나방 무리들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 나무를 잡을 땐 떡갈나무 같은 것들을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꽤나 주고 내려와야 했는데, 다음에 올 때는 엄마 등산화 말고 내 발에 맞는 트래킹화를 꼭 신고 와야겠다.
약 2시간 여의 산행 동안, 아빠가 왜 그렇게 산을 좋아하게 됐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산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가파른 경사 속에 뿌리를 내리고 커온 소나무부터 왜 저렇게 서있지 생각이 드는 큰 바위까지, 참 이해 안 되는 환경 속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생명들이 산에는 참 많다.
어쩌면 바위에 쓰여 있던 ‘대견’은 산에 머무는 모든 생명들에게 바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