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내 뒷사람이요..
출근 시간 2호선, 00역에서 환승하려고 내리던 중, 내 뒤에 서있던 사람이 지하철 스크린도어 틈 사이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어떤 단단한 물건이 내 등에 던져지는 촉감을 느꼈고, 매가리 없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끼는 순간 뒷사람의 핸드폰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걸 인지하고 본능적으로 바닥을 바라보니 핸드폰이 통! 한 번 튀기며 곧바로 선로로 떨어졌다.
같이 열차에서 쏟아져 나오던 사람들이 짜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마다 했던 망상(?)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다니..
핸드폰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X 됐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고 있었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사람이 핸드폰을 떨어트린 건 분명히 내 잘못은 아니었다. 하차하면서 앞에 서있던 내가 뒷사람의 핸드폰을 떨어트리게 할 만큼 큰 충격을 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내 등을 타고 흐른 그 떨어진 핸드폰의 촉감이 너무 선명해서, 무슨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처럼 적잖은 충격을 받은 채로 회사에 도착했다.
아무튼 핸드폰이 내 등에 맞고 떨어진 것이니 난 그 사람이 핸드폰을 찾는 것을 도와주는 게 맞았을까? 회사에 도착해서도 이상한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지하철 선로에 핸드폰 떨어졌을 때'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흔하게 있는 일이었고, 역무실에 찾아가면 도움을 받아 운행시간이 종료되고 핸드폰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검색을 해보고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만, 내가 똑같은 상황에서 핸드폰을 떨어트린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람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요즘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부디 그 사람도, 핸드폰도 무사했길 바란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릴 땐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꽉 쥐고 내리자. 출/퇴근 시간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