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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승완 Aug 17. 2020

[인스타 동양철학] 차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벤츠, BMW는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퇴궐하며 말하길 "사람이 다쳤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아니하셨다. (논어 향당편)


  퇴근길에 불길한 가톡을 받았다. 아파트 주차장에 작은 불이 났다고 한다. 인명 피해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당장 35개월 할부의 우리 집 차가 걱정이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다행히 우리 차는 무사하단다. 한숨 돌리며 그제야 물어본다. '우리 차가 괜찮다니 다행이네. 불은 왜 났어? 사람들은 안 다쳤고?'. 다소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주차장의 화재 소식을 듣고 자동차를 먼저 걱정한다. 애초부터 주차장은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던가. 그곳에 얼마나 비싼 차들이 많았을까? 거기에다 '거기 벤츠가 몇 대 있고, BMW가 몇 대 있을 거라며, 돈 있는 사람들 큰일 났다'라는 주제넘은 걱정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공자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마구간이 다 타는 상황에서 오로지 사람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이 '만'이라는 토씨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공자의 반응이 일반적인 것이었다면 굳이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이 내용이 전해질 이유가 없다.


  조선시대 문종실록에 등장하는 말 한 마리의 가격은, 약 면포 120 필~130 필이다. 이는 현재 시가를 기준으로 약 1200만 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명성이 자자한 제주마는 그 가격이 더욱 비쌌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지금의 자동차 값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조선시대와, 공자가 살던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동일선상에 두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공자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을 테고, 그 값도 상당했으리라 추론해볼 수 있다. 당시에는 아마 신용카드도 없었을 테니(혹시 있었다면 제보 바란다.) 이른바 현금 박치기의 고통도 크지 않았을까?


  한 마디로 공자는 활활 타오르는 벤츠와 BMW를 보고서도, "사람이 괜찮냐"라는 질문만 던졌던 것이다. 그리고 차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공 선생의 모습에,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으면 이런 기록을 굳이 남겼겠나. 물론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말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말 걱정은 하지도 않는 공자가 야속하다. 그럴 수가 있나?'라며. 애석한 일이지만, 당시 말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는 지금의 것과는 많이 달랐기에, 현재의 시각을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런 불편함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서라도, '말' 자리에 '차'를 대입해서 보자. 다만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생명 윤리는 그때의 기준과는 또 달라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분노와 염려를 갖는 사람들을 위한 해석도 존재한다. 오리지널 한문에는 띄어쓰기나 쉼표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이 에피소드를 '사람이 다쳤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가 아닌, '사람이 다쳤느냐? (제자가 말하길) 아닙니다. (그리고) 말에 대해서 물었다'로 해석한다. 이 해석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지만, 어느 쪽이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공자는 혼란한 사회 속에서도 내면의 인간다움, 도덕성을 회복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인(仁)이라고 한다. 엄격한 법보다는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무엇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자였다.  벤츠와 BMW, 그러니까 자본과 물질을 숭상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분명 본받을 만하다. 재물은 얼마든 다시 모으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SNS 시대가 와도 변하지 않는 사실 아닌가? 결국엔 '사람'이다.


본 글은 2020년 2학기 영남대학교 도전학기제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인스타로 만나는 동양철학(가제)'의 일부분입니다. 공식 인스타 계정(www.instagram.com/insta_dongyang)과 동시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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