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역병(COVID- 19)이 인류에게 닥쳐오기 얼마 전 이었습니다. 불규칙한 생활이었지만 젊음이란 사유서를 들이밀며 몇 번을 유예시켰습니다. 하지만 겨울비에 신발이 젖어 돌아오던 날 결국 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 전부 통과한 줄 알고 마음을 놓은 찰나 덜컹- 뒷발이 걸려버린 것처럼요. 약 오 년 만에 몸살감기를 앓았습니다. 며칠 잠이나 실컷 자려 했지만 그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도 한기에 몸을 떨었습니다. 열을내려보려 이불을 걷어냈지만 바들바들 떨며 기도하듯 합장한 두 손을 무릎과 무릎 사이에 넣고 몸을 웅크렸습니다. 등골 뼈마디마다 날이 시퍼런 칼바람이 푹- 푹- 박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시각을 가늠할 수 없었던 캄캄한 밤, 몸을 앓으면서생각마저 앓았습니다. 언젠가의 기억들은 내 몸을 더 들끓게 했습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기시감이었습니다.
이천십오년, 몸살감기에 시달리던 여름밤이었습니다. 열이 오르면서 가스레인지에 올려둔 라면 물에 올라오는 기포처럼몇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의 겨울, 나를 초라하고 작아지게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머리 안팎으로 점점 끓어올랐습니다. 몸의 열이 생각으로 전도된 건지 불붙은 생각이 몸으로 번져버린 건지 분간되지 않았습니다. 과열되어 가는 몸과 생각의 전개에서 어느 곳이든 종료 절차를 무시하고 플러그를 뽑아버리고 싶었던 오뉴월 밤 기억입니다. ‘십 년이 지났는데… 십 년씩이나 지났는데도 과거의 나는 한숨 섞인 입김을 뱉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겨울 눈길을 걷고 있구나… 세월이라는 두꺼운 암막 커튼에 가려져 있던 것뿐… 아직 분리도 배출도 제대로 하지 못했구나…’ 방치한 시간만큼 자욱하게 먼지 쌓인 기억과 성기게 매듭지은 감정은 나의 몸에 빗장이 풀렸을 때 증오라는 이름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왔던 것입니다. 더는 지난날과 같을 수 없다, 는 마음은 내 안의 방어기제를 작동시켰습니다. 이 시스템은 힘에 부칠 때면 늘 같은 사람을 떠올립니다. 고맙게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주 입던 원피스를 입고 마지막 모습처럼 수줍게 미소 지어 주었습니다. 지친 날숨에 내 안의 열을 뱉고 들숨에 꿈결 같은 그 사람 모습을 들이마셨습니다. 그 호흡은 나를 환기했고 선잠에 들게 했습니다.
여윈잠에서 눈을 떴습니다. 고개를 돌려 본 창밖은 붉었습니다. 그 붉음은 불투명한 유리창으로 보이는 시야를 가득 채웠습니다. 몸과 생각 속 열이 내 안에서 창밖으로 빠져나간 것만 같은 붉음이었습니다. 기이한 창밖 광경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아침이 지나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열어 본 휴대전화 앨범 속 사진은 여느 아침과 같은 볕이 드는 창이었습니다. 내가 봤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이천십이년 일월에 들었던 몸살감기 후로 나는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어차피 지나갈 것을 알기에 며칠 끙끙 앓고 수척해진 얼굴로 욕실 거울 앞에 서면 어딘가 영글어진 것만 같은 개운한 기분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몸살은 매번 윗입술 같은 자리에 머무른 흔적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물기가 맺혀있는 작은 창으로 드는 오후의 볕에 며칠간 제대로 먹은 게 없어 앙상해진 몸을 내놓고 욕실 거울 앞에 서서 메마른 입술 위로 난 상처를 보며 혼잣말했습니다. ‘갔구나…’
지독한 몸살감기에도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지 않는 일. 이 짓도 더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올해의 감기는 입술에 생채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몸이나 생각 혹은 두 곳 모두에 든 감기는 아직 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감기에 걸린 후로 일월 이월 내내 골골거렸습니다. 새해라는 이유로 다짐했던 나의 스프린트[1]는 젖어버린 신발을 겨울의 짧은 볕에 널어둔 채로 숨을 골랐습니다.
[1] 전력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