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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20. 2023

나 같은 사람들

나는 빈티지 카페를 하고 있다. 카페를 하는 사람은 어떤 카페에 갈까? 바리스타의 안목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지극히 사적인 심미안으로 고른다. 나는 핫한 곳보다 은은한 곳이 좋다. 고유한 분위기가 배어나는 곳이 좋다. 몇 해가 지나도 유효한 스타일이 좋다. 핫한 것들은 한 해만 지나도 한 물 간 것처럼 보인다. 멋쟁이들로 가득한 곳은 좀 부담스럽다. 그들의 무대를 구경하는 맛도 있지만 서로를 전시하고 관람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을 보면 눈이 즐겁다. 잡지나 핀터레스트를 보는 것처럼. 그 스타일이 내면이 자아낸 것일 땐 멋지다. 눈길뿐 아니라 마음도 끈다. 스타일리시한데 너무 트렌디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감이 안 올 때도 있다. 그가 옷을 열심히 입는다는 것 말고는. 나는 그 사람에 대해 힌트를 주는 스타일이 좋다. 언제 샀는지 알 수 없는 클래식한 옷 몇 벌을 잘 다루는 사람이 멋지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그릴 수 없고 궁금하지 않을 때도 있고, 한눈에 알 수 있고 궁금해질 때도 있다. 나와 통한다고 느낄 때 그곳에 머물고 싶다. 나도 내 카페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 같은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우리 손님 대부분은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온 분들이다. 찾아온 손님보다 오가다 온 손님이 많다. 이따금 '나 같은 사람들'도 온다. 그들은 어쩌다 온 게 아니라 골라서 온 사람들이다. 아마도 인스타를 보고 왔을 것이다. (인스타에 없는 곳은 지도에 없는 곳이 되었다. 적어도 젊은이들의 지도에는. 예전에 전단지를 뿌렸다면 이제 피드를 통해 초대해야 한다.)


이들은 보통 혼자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와서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머무는 동안 얼마간 의식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동질감이다. 나를 알아보지 않기를 바랄 때 우리는(나와 나 같은 사람들)은 스타벅스에 간다. 어떤 곳을 찾아갈 때는 그 풍경에 들어가 앉고 싶을 때다. 나는 손님이 각설탕처럼 풍경에 녹아드는 것을 본다.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고 볕을 쬐며 책을 읽는 모습을 본다. 몸을 벗어두고 책 속에 풍덩 빠지는 것을. 나는 그가 여기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삶은 내게 백야다. 공포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 카페에서 자신의 시간을 누릴 때 흐뭇하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카페에서 잡지를 보거나 다이어리를 쓰는 아기 엄마 손님도 있다. 나는 잡지는 잘 읽지 않지만 어릴 적 엄마가 잡지를   맛있게 읽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매달 두세 권 사다 둔다. 보는 사람이 많진 않아서 관둘까 싶다가도 아기 엄마 손님이 "사장님 10월 잡지 언제 와요?" 수줍게 묻거나 아침에 자주 오는 모녀 손님이 신간호를 반가워하며 품에 안고 자리로 가면 11월 잡지를 주문하게 된다.


예전에 종종 가던 F라는 카페가 있었다. 무용을 하던 사장님이 차린 곳이었는데 자기가 꾸린 공간을 너무나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독서 모임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도 하고 작은 공연도 하는 작지만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책을 읽는 게 멋쩍지 않았다. F는 카페이자 살롱이라는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료를 마신다거나 공간을 이용한다 이상의 느낌이 있었다. 스타벅스에 가는 것과 F에 가는 것은 달랐다. 전자가 익명 속으로 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예전에 유퀴즈에서 '책바'라는 곳을 봤다.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해도 됐다. 만약 근처에 살아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밤에 들러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생활의 근사한 일부가 아니 생활의 윤활제가 됐을 것 같다. 그곳에는 아마 나 같은 사람들, 혼자만의 시간을 제 2의 공기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다. 서로 좋아하는 책은 다르더라도.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감정은 충만감과 고양감이다. 그런 곳에서 파는 건 음료가 아니라 충만감과 고양감이다. 그래서 편한 집과 가까운 카페를 두고 찾아간다. 충만감과 고양감을 살 수 있는 곳은 귀하기 때문에.


'성공으로 가는 최고의 지름길은 사랑하는 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충만감과 고양감. 그것을 카페라는 공간으로, 글이라는 형태로 주고 싶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들은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낙관을 품어 본다. '일'을 생각할 때 언제나 떠올리는 김연수의 문장으로 마무리.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 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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