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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Aug 15. 2023

광복절 특사

이틀 전 그 사람에게 문자가 왔다. 기상 알람이 잘 맞춰졌는지 확인차 휴대폰을 만졌는데 '늘 처음처럼'이 보였다.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 하고 처음처럼 잘 지내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15년 전 타던 차를 팔았더니 삼천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작은 차를 사고 남은 돈은 생활비로 썼다. 그 차는 지금도 비실비실대며 여전히 나를 직장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큰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 온 아파트는 전기와 수도가 차례로 고장 나고 있다. 싱크대 수도는 한 손으로 대를 잡고 물을 틀지 않으면 툭 하고 떨어져 버린다. 아이의 방 형광등은 일 년에 한 번 스파크를 일으키며 꺼져버린다. 세 번째다. 처음에는 불이 날까 겁이 나서 밤새 잠 못 자고 벌벌 떨었는데 이번에는 코팅된 장갑을 찾아서 끼고 차단기를 내리는 여유를 부렸다.


이렇게 십 년이 넘어가니 새로 설치한 것들이 하나둘씩 고장 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도 '늘 처음처럼'이다. 대단하다.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하는 그 사람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린 그때 이미 충분히 끝낸 사이니까.


노노의 마음이 아프다는 걸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하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이 와중에 이런 뭔 되지도 않는 배려를 하다니.

삭제하자 마음먹은 순간 숫자 1이 사라져 버렸다.

전화는 오지 않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들면 톡 하고 눈물샘이 펑펑 터지기 일보직전인 나이기에......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약속을 지킬 지 다짐을 받고 또 다짐을 받았다.


이틀 동안 잠을 설쳐 비몽사몽인 채로 광복절 아침을 맞이했다.

시리얼을 먹고 있는 노노에게 아빠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래? 잘됐네, 안 그래도 내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난 오늘도 괜찮다고 말해.'

쿨하다. 매우 쿨하다. 이틀간 말 못 하고 고민한 내 걱정이 싹 날아가 버렸다.


노노는 지금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약 때문인지 하루에 15시간을 자고, 먹고 먹고 또 먹어서 살이 엄청 쪘다. 안 먹을 때는 안 먹어서 걱정이더니 이제는 너무 먹어서 걱정이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만족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있나 보다. 피자가 먹고 싶다는 노노에게 1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오거나, 스스로 전화로 주문을 하면 먹어도 된다는 조건을 말했다. (노노는 아직 낯선 사람과 전화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이도 저도 싫으니 그냥 밥을 먹겠다는 아이에게 밥 없다고 했더니 밥을 해달란다.

싫어. 엄마도 오늘은 해방된 날을 만끽할 거야. 광복절이니까.

엄마가 뭐 광복절특사야? 그냥 하던 대로 밥 해주면 안 돼?

응, 안돼.

가마솥밥 먹고 싶은데......라고 여운을 남기더니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럼 네가 쌀을 씻어. 밥은 내가 해줄게라며 생색을 냈다.

가스불 앞에서 밥물이 넘을까 지켜서 있다가 누룽지까지 눌린 밥을 해주었다.

엄마의 땀으로 지어낸 밥 먹으니까 맛있지?

응, 나 조금 더 먹을래.

청국장에 쓱쓱 비벼 삼키면서 '나를 알아볼까?'라고 묻는다.

핏줄은 당기니까 느낌으로 알 거야.


법원 앞에서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니까 잘살아. 잘 살아서 아이가 커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정말 그렇게 되어서 그 사람이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아이와 쭈욱 만났으면 좋겠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그런 만남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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