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발령이 났다. 2년 4개월간 몸 담았던 정든 팀을 떠나 새로 생기는 조직의 막내로 간다. 회사생활이 1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막내가 아닌 적이 없었다. 너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이리라.
그동안 근무했던 팀은 일은 험악했다. 이름은 채권팀, 하는 일은 그야말로 돈 받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도시가스 요금을 체납할 때는 사업이 잘되고 번창하는 바람에 바빠서 깜빡한 경우는 거의 없다.
돈이 돌지 않아서, 사업이 망할 위기에 처해서, 여기저기 이미 손을 벌린 터라 더 이상 솟아날 구멍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어서, 가압류 딱지가 붙을 대로 붙어서 회생이나 파산이 불가피해서, 혹은 세상 모든 시름을 등지고 스스로 삶에 안녕을 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채무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밀린 요금을 내라고 부탁도 했다가, 화도 냈다가, 선물도 줬다가, 장비를 들고 찾아가서 협박도 해야 하는 우악스러운 일을 해야만 했다. 어떤 채무자들은 밤이고 낮이고 전화해 욕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뜰 것처럼 무서운 소리를 해대며 울기도 하고, 밤길 조심하라며 오히려 돈 받아야 할 사람처럼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난 그래도 좋았다. 물론 내가 아주 험악한 일의 최전선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난 우리 팀 아저씨들이 좋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팀 아저씨들이 회사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 모난 구석도 있고, 성격이 대단하기로 소문이 나있고, 잘 나가지 못해서 몇 년째 이런 일을 한다는 눈길을 받기도 하는 아저씨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한 꺼풀 벗겨보면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정을 듬뿍 주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중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두루 다 좋았지만, 그 아저씨는 특별히 내 은인이다. 내가 인생의 동굴 속에서 울부짖으며 괴로워할 때, 말없이 들어주며 위로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보이지 않게 혹은 보일 수밖에 없더라도 배려를 많이 해주신 분이다. 그리고 난 오늘 그분 앞에서 울어버렸다.
오늘은 송별의 의미를 담은 마지막 회식이었다. 여느 때처럼 즐거운 분위기로 고기를 구워 행복하게 배를 채우는데,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려다가 그냥 눈물이 나왔다. 회사 아저씨들 앞에서 울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그냥 여러 말이 뒤섞여 입술에 맺히다가 말은 나오지 않고 애꿎은 눈물만 나왔다.
우리 팀은 나까지 여덟 명인데, 이번 발령으로 세 명이나 다른 팀으로 간다. 팀장도, 막내도 보내버린 인사발령에 앞으로 팀이 제대로 운영될지 걱정만 많이 했는데, 회식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난 왜 울었을까.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아저씨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다.
회식이 끝나고 옆자리 아저씨가 집 앞까지 같이 걸어주셨다. 이런 밤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센티해진 밤. 오늘따라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밤공기까지 맡으니 정신이 돌아왔다. 아이고 망신이야. 난 대체 왜 울었을까. 갈림길에서 조심히 가시라 인사를 하며 겨우 말을 골랐다. 울었지만, 웃고 끝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