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빵 냄새가 코 끝을 찌른다. 갓 구운 퐁신한 카스텔라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자를 대고 칼집을 몇 번 낸 뒤슥슥 몇 번의 칼질을 거치면커다란 카스테라가 10등분 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손놀림으로 유선지를 덮고 카스테라를 뒤집어 미리 접어 둔 박스에 카스테라를 넣는다. 딱 알맞은 크기.
카스테라를 옆으로 밀면 계산 담당 직원이 비닐에 빵을 담는다. 옛날 카스테라 단일 메뉴라 개수만 말하면 된다. 기호에 따라 생크림을 추가구매 할 수 있다.
이 간단한 과정을 하려고 오늘 30분을 썼다. 모든 게 다 냄새 때문이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시장에 들렀는데 익숙한 고소함이 코끝을 찔렀다. 아니나 다를까, 세상에서 가장 고운 자태를 뽐내는 커다란 카스테라가 냄새를 풍기며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사람은 오늘도 많았다. 가게 앞에서 시작된 줄은 ㄱ자로 꺾여 골목까지 이어졌다.
왜 그랬을까. 순간 희망찬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린 듯 줄을 섰다. 남편과 아이는 엄마의 빵 욕심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생각보다 줄이 줄어들지않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커다란 카스테라 덩어리가 나오고 드디어 계산대에 가까이 가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정체의 원인은 바로 곳곳에 포진한 '큰 손' 때문이었음을.
큰 손들은 절대로 하나만 주문하지 않았다. 한 사람 앞에 두 개는 기본, 많게는 네 개 까지 빵을 사갔다. 한 판에 10개씩 나오는 구조상 큰 손이 두 세 사람만 붙어도 다시 기다림을 겪어야 했다. 여러 사람이카스테라 하나만 주문해서 줄이 훅 줄어들기를 바란 것은 그저 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빵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일행과 빵의 주문 개수와 생크림 구매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다. 그런데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토론에 감정이 실렸다.
우리도 두 개 사뿌까! 기다린 게 억울해서 안 되겠다!
평소 같으면 빵만 하나 사가는 나도 그런 이야기 틈에 있으니 저절로 설득이 됐다. 30분이나 기다렸는데 겨우 빵 하나만 사가는 것은 왠지 손해 같았다. 눈앞에서 큰 손 아저씨가 네 개를 한꺼번에 주문하는 바람에 또 한 차례의 기다림을 이겨내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주문을 위해 입을 뗄 수 있었다.
카스테라 하나 주시고요. 생크림도 하나 주세요!
누가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오늘 나는 기다림에 지쳐 평소에는 구매한 적 없던 생크림을 한 통 추가하며 2천 원을 썼다. 생크림은 3시간 내에 냉장보관해야 한다는 말에 집에 돌아와 생크림을 바로 냉장고에 넣었다.
뜨거운 김이 잘 빠지라고 일부러 한 쪽은 열어서 포장해준다
유럽여행을 할 때는 특히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나도 스페인 여행 때 당한 적이 있는데, 그쪽 사람들은 잠깐의 접촉 만으로도 순식간에 지갑을 털어가는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 한국의 시장에도 유럽의 소매치기만큼 무서운 존재가 있으니 바로 '냄새'다.
시장 구경을 할 때는 냄새를 조심해야 한다. 잘못 걸렸다가는 시간도 털리고 지갑도 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자발적으로 털리는 입장이라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늘도 어렵게 쟁취한 서문시장 카스테라. '난 생크림 없으면 안 먹는다'며 생크림 예찬론을 펼친 뒷사람의 취향이 나와 일치하는지진지하게 먹어볼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