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도 Apr 28. 2024

시장에 가면 냄새를 조심하세요

집념의 서문시장 카스테라 구매기

고소한 빵 냄새가 코 끝을 찌른다. 갓 구운 퐁신한 카스텔라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자를 대고 칼집을 몇 번  뒤 슥슥 몇 번의 칼질을 거치면 커다란 카스라가 10등분 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손놀림으로 선지를 덮고 카스라를 뒤집어 미리 접어 둔 박스에 카스라를 넣는다. 딱 알맞은 크기. 


카스테라 옆으로 밀계산 담당 직원이 비닐에 빵을 담는다. 옛날 카스라 단일 메뉴라 개수만 말하면 된다. 기호에 따라 생크림을 추가구매 할 수 있다.


이 간단한 과정을 하려고 오늘 30분을 썼다. 모든 게 다 냄새 때문이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시장에 들렀는데 익숙한 고소함이 코끝을 찔렀다. 아니나 다를까, 세상에서 가장 고운 자태를 뽐내는 커다란 카스라가 냄새를 풍기며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사람은 오늘도 많았다. 가 앞에서 시작된 줄은 ㄱ자로 꺾여 골목까지 이어졌다.


왜 그랬을까. 순간 희망찬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린 듯 줄을 섰다. 남편과 아이는 엄마의 빵 욕심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생각보다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커다란 카스라 덩어리가 나오고 드디어 계산대에 가까이 가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정체의 원인은 바로 곳곳에 포진한 '큰 손' 때문이었음을.


큰 손들은 절대로 하나만 주문하지 않았다. 한 사람 앞에 두 개는 기본, 많게는 네 개 까지 빵을 사갔다. 한 판에 10개씩 나오는 구조상 큰 손이 두 세 사람만 붙어도 다시 기다림을 겪어야 했다. 여러 사 하나만 문해 줄이 훅 줄어들기를 바란 것은 그저 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빵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일행과 빵의 주문 개수와 생크림 구매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다. 그런데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토론에 감정이 실렸다.


우리도 두 개 사뿌까!
기다린 게 억울해서 안 되겠다!


평소 같으면 빵만 하나 사가는 나도 그런 이야기 틈에 있으니 저절로 설득이 됐다. 30분이나 기다렸는데 겨우 빵 하나만 사가는 것은 왠지 손해 같았다. 눈앞에서 큰 손 아저씨가 네 개를 한꺼번에 주문하는 바람에 또 한 차례의 기다림을 이겨내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주문을 위해 입을 뗄 수 있었다.

 

카스테라 하나 주시고요.
생크림도 하나 주세요!


누가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오늘 나는 기다림에 지쳐 평소에는 구매한 적 없던 생크림을 한 통 추가하며 2천 원을 썼다. 생크림은 3시간 내에 냉장보관해야 한다는 말에 집에 아와 생크림을 바로 냉장고에 넣었다.

뜨거운 김이 잘 빠지라고 일부러 한 쪽은 열어서 포장해준다

유럽여행을 할 때는 특히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나도 스페인 여행 때 당한 적이 있는데, 그쪽 사람들은 잠깐의 접촉 만으로도 순식간에 지갑을 털어가는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 한국의 시장에도 유럽의 소매치기만큼 무서운 존재가 있니 바로 '냄새'다.


시장 구경을 할 때는 냄새를 조심해야 한다. 잘못 걸렸다가는 시간도 털리고 지갑도 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자발적으로 털리는 입장이라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늘도 어렵게 쟁취한 서문시장 카스. '난 생크림 없으면 안 먹는다'며 생크림 예찬론을 펼친 뒷사람의 취향이 나와 일치하는지 진지하게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파가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