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몇 시 몇 분 몇 초인지'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침대에서는 탁상시계의 형체만 흐릿하게 보여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누워서 눈만 떴는데도 몇 시인지 보인다니!
시계 옆에 놓인 달력을 보았다. 와, 달력을 그대로 옮겨 적으라고 해도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양력 날짜는 물론이고, 드문드문 작게 적혀있는 음력 날짜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야, 몽골인이 보는 세상이란 이런 것일까. 그리 넓지 않은 방을 한 바퀴 휙 둘러보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주 선명하고 또렷했다. 너무나 잘 보이는 바람에 모든 사물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기분이었다. 온 세상이 너무나 선명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한 번 뚜껑을 열었다 렌즈를 깎고 다시 뚜껑을 덮은 오른쪽 눈과, 한 번 뚜껑을 열었다 렌즈를 깎고 다시 뚜껑을 덮었는데 뚜껑이 접히는 바람에 다시 잘 펴서 닫은 왼쪽 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 나의 시력은 좌 0.8, 우 1.0이다. 이제는 몽골인만큼 앞이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안경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시력검사를 하러 갔을까. 아마도 그간 눈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일 게다.
눈 관리가 별 것 있나. 스마트폰이나 PC 화면을 덜 보고, 자기 전에 어두컴컴한 이불속에서 핸드폰 하지 말고, 가끔씩 손을 비벼 눈 위에 얹어 온열 마사지도 해주고, 눈을 감은 채로 구석구석 눈알을 굴려 스트레칭도 해주고, 가까운 모니터만 보지 말고 멀리 푸르른 자연도 한 번씩 봐주고, 눈에 좋은 음식과 영양제도 챙겨 먹고,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별것 아닌 일들이 참 어렵다. 별것 아니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겠지.
시력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과거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다 보니, 오늘의 내가 편안히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느낀다.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좋은 것들만 보겠다고,좋은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기도했었다.
그때의 기도대로 과연 살아왔나 돌아본다. 눈이 너무 아파 간절한 기도로 밤을 지새웠던, 그날의 결심과 감사로 다시 마음을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