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검진 때 구강검진을 받으면서 내 치아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앞니 뒤에 커다랗게 변색된 부분이 어떤 것인지 당장 직시해야만 했다. 아, 그렇지만 치과 가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결국 미루고 또 미뤄서 여태까지 치과에 가지 않았다. 그 사이 치과에서는 정기검진을 촉구하는 문자가 여러 통 왔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치과입니다. 딘도님이 2022년 5월 27일에 진료를 받으신 이후로 19개월이 지났습니다. 정기적인 검진 및 치료가 딘도님의 구강건강을 증진시킵니다. 전화예약 후 방문하셔서 구강건강을 지켜주세요^^
백번 옳으신 말씀. 그런데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다.땅바닥에 붙은 엉덩이를 발로 툭 차 일으켜 준 것은 언젠가 들은 적이 있어 기억하는 간단한 정보였다.
스케일링 건강보험 적용은 일 년에 한 번
그렇다. 나는 2023년의 스케일링 보험적용 혜택을 아직 누리지 않았다. 그리고 소멸시효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올해가 지나고 2024년이 되면, 2023년의 건강보험 적용 혜택은 날아가고 만다. 마치 2023년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그리하여 나는 굳센 마음을 먹고 치과치료를 예약했다. 다행히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에 마침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가야지' 하며 고뇌했던 것에 비해 예약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이젠 진짜 가야 한다.
회사에서 종무식을 마치고 치과로 향했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 금방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서니 예약자를 확인한다. 첫 방문이라 작성해야 하는 서류들을 작성했다. 잠시 앉아있다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가실게요."
다행히 치아 x-ray를 찍는 순서였다. 시키는 대로 흘러내린 머리띠처럼 생긴 둥그런 받침대에 이마를 붙이고, 리드처럼 생긴 것을 치아로 앙 물었다.
"그대로 계세요."
지루하기도 해서 앞에 주의사항을 찬찬히 읽는데 '환자의 눈에 x-ray를 직접적으로 비추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간접적으로 비춘다고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끝났습니다. 저 쪽 1번에 앉아 계세요."
올 것이 왔구나. 침이 꼴깍 넘어갔다. 시키는 대로 가글을 하고 나니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검진부터 하겠습니다."
이제 드디어 내 치아의 실체가 밝혀진다. 지난번 구강검진 때 발견한 검은 부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얼굴에 초록색 수건을 씌워놔서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지만, 바람을 불어가며 살피는 손길이 느껴졌다.
"확인해보고 싶으시다는 게 이 부분 맞나요?"
"ㅇㅔ"
입에 기구들이 들어와 있어 멍청한 발음으로 대답이나왔다. 꼼꼼하게 바람을 불어가며 확인하던 의사 선생님이 촬영도구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사진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검진이 끝나고, 가글을 했다. 두근두근. 이제 내 치아의 실체가 발표되는 순간이다.
"우선 충치는 전혀 없으시고요."
오호라. 그럼 이건 뭐지?
"이건 예전에 아말감으로 때우신 것 같아요. 이게 오래되면 변색이 되기도 하거든요. 심미적으로 안 좋아서 치료를 원하시면 제거하고 다시 해드릴 수 있습니다. 충치가 만약 안에 있다면 아말감이 이미 깨져서 오시기 때문에, 충치는 아닙니다."
와! 수많은 치아보험 가입 권유 전화에도 넘어가지 않고 버틴 보람이 있다! 아이를 재우기 전에 씻을 짬이 나지 않아 곤란하더라도 반드시 양치는 하고 잤던 보람이 있다!
야호! 나, 아직 건치다!
건치 판정을 받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치아 뒤에 꽁꽁 숨겨져 있어 심미적으로 안 좋을 것도 없으니 그냥 두기로 하고, 스케일링을 받았다. 마취액으로 가글을 하고 자리에 누웠더니, 크게 아프지 않고 금방 끝이 났다. 평소에는 스케일링도 많이 무서웠는데, 충치가 없다는 말에 기분까지 마취가 되었나 보다.
치석이 전부 제거되어 한결 가벼워진 치아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참 후련했다. 묵은해에 치석을 두고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숙제 같았던 치과치료가 끝났다. 깨끗한 치아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 나만의 방식으로 2023년을 정리하고 있다.한 해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