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으로 집에 있을 때였다. 아기를 돌보며 집에만 있는 시간은 괴롭고 외로웠다.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먹고 싸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생활조차원하는 시간에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시간들.
그때마다 나는 숨통을 틔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언제나 빈자리가 없는 도서관 주차장을 지나 바로 옆에 있는 가파른 골목에 주차를 한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젖먹이 아기를 아기띠로 둘러메고 책을 담을 에코백도 한쪽 어깨에 건다.
아기까지 데리고 굳이 도서관에 나오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도서관에 들어서기만 해도 나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책과 책 읽는 사람들로 꽉 찬 조용한 도서관은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운이 좋게 내 품에서아기가 잠이 들었을때는 서가를 돌며 실컷 책을 구경했다. 반납할 책을 무인반납기에 찍어서 짐을 덜어내고,조금은가벼워진 어깨로 자료열람실 구석구석을 돌며 마음껏 도서관 여행을 즐겼다.
혹시 아기가 잠들어 있지 않을 때면 검색용 pc를 이용해서 재빠르게 관심 있는 책만 대출하고 열람실을 빠져나왔다. '아기 출입금지'와 같은 주의사항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도서관의적막을 깰까 봐 심장이 쿵쾅거렸다. 노키즈존이 가득한 세상이니까.
언젠가 내가 '스트레스를 풀러 도서관에 간다'라고 말하자, 이름이 '도서관'인 술집에 가는 것 아니냐며 놀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웃겼는지, 아니면 내 취미가 우스웠는지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 여럿이 크게 웃었다. 하긴그 사람은 스트레스 풀러 클럽을 다닌다고 했으니 나하고는 충전하는 방법이 많이 다르긴 했다.
오늘도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재미없게도 '독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대답이 하도 식상하고 상투적이어서 언제는 한 번 진지하게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나는 도대체 왜 책을 좋아할까? 이유가 뭘까? 내게 독서란 어떤 의미일까?
책 읽으러 일어난 어느 새벽, 선물처럼 해답이 나에게로 왔다. 생각해 보니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책은 나에게 '여행'이었다.
짐을 쌀 필요도, 예약할 필요도, 이동할 필요도 없는완벽한여행. 언제든 어디서든 앉아서 누워서 엎드려서 책을 펼치면 시작되는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 아무리 비싸도 하루에 만 원이면 충분한여행. 일정을 조율하고타인을 배려할 필요가 없는홀가분한 여행.다녀오면 마음이 훌쩍 커 있는 값비싼 여행-
이런 여행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누구라도 당장 떠나고 싶을 것이다.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니 취미가 독서인 것이 더욱 당당해졌다. 내게 책 앞에 앉는 설렘은 여행지로 출발하는 설렘과 같다.
오늘 아는 동생에게 책 추천을 해주다가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이라고 말하니 '언니 진짜 대단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대단하긴. 절대 아니다. 나는 취미생활에 충실한 것뿐. 내일도 나는 나만의 은밀한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이다. 나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