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0원짜리 건강검진의 수확이 있다면 무료로 간단히 받은 구강검진의 결과이다. 공단검진은 형식적으로 훑어주신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기대가 없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 있나요?"
의사 선생님의역시나 형식적인 질문에 '음식을 씹을 때 오른쪽 아래 어금니가 가끔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라는 말이 올라오려는 것을 꿀꺽 삼켰다. 어차피 스케일링을 하러 치과에 가야 하니 그때 꼼꼼하게 살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바람을 불어가며 치아를 꼼꼼히 살피시는데, 유독 앞니 뒷면을 유심히 여러 번 살피셨다. 아아. 촉이 왔다. 검진 중에 스무스하게 지나가지 않고 멈칫한다는 것은 환자에게 해 줄 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 뒤쪽 까만 것 알고 계셨어요?"
"네? 아니요? 그래요? 몰랐어요!"
그쪽은 신경도 안 쓰고 있던 곳이었다. 사실 뿌리 쪽이 좀 뻐근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교정을 하고 나서 치열이 틀어지는 바람에 불편함이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보철이 변색된 것 같기도 한데, 썩었을 수도 있으니까 교정하신 치과에서 확인 한 번 해보세요."
고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가본 적이 없는 수원의 교정치과를 무슨 수로 간단 말인가. 그런 말을 구구절절할 필요는 없으니 '네'하고 대답하고 진료를 마쳤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치과를 가야지'라고는 생각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들 좋아할까 싶지만 나 역시도 치과 가는 것이 싫다. 치과 특유의 냄새와 소리가 유쾌하지는 않다. 일 년에 한 번 겨우 스케일링하러 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치료를 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발걸음이 무겁다.
거울로 확인이 불가능한 부분인데 남편한테도 괜히 보여주기가 싫었다. 꽁꽁 감춰두고 있다가 오늘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은 해봐야겠다 싶어서 해당 부위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혹시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작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사진을 확인한 순간,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까만 부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뜨아. 망했다.
크기와 색깔을 확인한 뒤로 잔잔하게 불편감이 있는 치아가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치과를 검색했다. 걸어서 5분이면 갈 거리다. 예약을 하고 시간을 내서 방문하면 필요한 치료와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빠에게 연락해서 고등학생 때 교정치료를 했던 병원의 이름과 위치를 알아두었다. 대구에서 당장 갈 수는 없더라도 전화로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잊혔던 스케일링과 음식을 씹을 때마다 이따금 불편했던 어금니가 생각났다. 그런 것들은 이제 커다란 검은 충치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아휴. 가야지. 가긴 가야지. 더 늦기 전에 빨리 꼭 가야지. 빨리 갈수록 좋은 거니까 얼른 가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가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치과가기가 무섭다는 나의 말에 나보다 훨씬 치과를 자주 다니는 남편이 무심한 말로 용기를 북돋아 준다.
"요새 기술이 좋아져서 많이 안 아파."
눈 딱 감고 누워 있다 보면 후루룩 뚝딱 치료가 끝나 있으면 좋겠다. 손발을 오그라뜨리는 무서운 치통을 견디면서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누워있을 필요도 없이 아프지 않게 휘리릭 뚝딱 깨끗한 치아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마취를 하면 1,2,3초 세고 나서 '다 끝났습니다.'라고 한다던데. 그 정도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