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부터 머리숱이 많았다. 머리를 묶으려 한 올 한 올 정성껏 모아 한 손에 그러잡으면 밧줄처럼 두꺼워 무겁기까지 했다.
어릴 때는 그게 참 스트레스였다. 숱도 많은 데다가 곱슬이기까지 하니 못생긴 얼굴을 한층 더 못생기게 만드는 것 같았다. 외모에 예민해진 중학생 때부터는 정기적으로 매직파마를 했는데, 가는 미용실마다 한숨을 쉬곤 했다.
"머리숱이 왜 이렇게 많아.이거 언제 다 해."
"머리숱 좀 쳐도 될까?"
"어머, 머리숱 봐."
미용실에 '기장추가'는 있어도 '숱추가'는 없으니 나는 달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같은 값으로 시간과 노동이 많이 필요한 시술을 해야 하니 나 같아도 싫었을 것 같다.내가 머리숱이 너무 많아 푸념을 할 때면, 엄마는 늘 옆에서 나를 위로하셨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이다음에 할머니 됐을 때 얼마나 좋아! 그리고 엄마도 머리가 그렇게 많았었는데, 이거 봐, 지금은 많이 줄었어."
엄마 말씀이 맞았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였나, 어느 순간 머리를 감을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가 가벼워져서 오히려 좋았다. 뭉텅뭉텅 빠져 수챗구멍을 막는 머리카락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난 머리카락 부자니까.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어느새 밧줄이 많이 얇아져 있었다. 많이 얇아진 평범한 머리숱으로 나는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했다. 그동안 나는 늘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다. 그게 제일 간편했고 바쁜 일상에 거슬리지 않았다.
출근준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빨리 마르는 짧은 단발을 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제일 만만한 올백에 포니테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마에 동그랗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을 발라옆머리를 위로 올려 빈 구석을 가렸다. 버릇처럼 슥슥 머리를 만져 누르기도 했다. 잠시동안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가린 빈 곳은 어느새 훤히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았다.
슬펐다. 대머리 아저씨가 옆머리를 넘겨 속살을 가리는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든 것은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할 때 자꾸만 내 이마로 눈길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눈은 자꾸 머리를 향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 사실이 더 서글펐다.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자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출근해서 자리에만 박혀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어쩌다 누군가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른 눈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꿈에서는 내가 대머리로 나오기도 했다. 머리가 훤히 벗겨져서는 흉한 모습이었다. 머리통을 만져보니 맨질맨질했다. 그 촉감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다.
나이 서른 중반에 예비 대머리로 살고 있는 나의 속사정을 들은 남편이 병원을 검색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탈모전문 성형외과가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탈모 때문에 병원이라니. 착잡한 마음에 병원 방문이 썩 내키지 않았다. 우유부단한 나를 잘 아는 남편은 당일 바로 예약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퇴근 후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는 신중하고 꼼꼼하게 이루어졌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계로 모발의 굵기와 밀도를 측정했다. 이번에는 옆에 놓인 머리띠로 이마를 한껏 드러낸 뒤 플래시를 최대한 밝게 터뜨려 사진을 찍었다. 정면과 측면은 물론이고 정수리까지 훤하게 플래시를 받았다.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에 생각보다 굴욕적이지는 않았다.
잠시 후 상담을 위해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은 차트와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시며 진단을 내려주셨다.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아. 안도의 말씀이었다. 모발의 굵기나 밀도가 전체적으로 균일하고, 사진상으로도 크게 문제 되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가 걱정되는 부위를 콕 집어 물어보자, '평소에 머리를 자주 묶고 다니시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잘 때 빼고는 늘 묶고 있다는 대답에 '견인성 탈모'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견인성 탈모는 말 그대로 머리를 뒤로 너무 꽉 묶고 있어서 생길 수 있는 탈모라고 하셨다. 수치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탈모약을 따로 처방해드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다만 머리를 묶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약이 정 쓰고 싶다면 약국에서 구매하시면 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감사했다. 약을 팔거나 시술을 강요하지 않고 솔직하고 군더더기 없이 진단해 주셔서, 그리고 우려했던 '탈모'가 아니라서 감사했다. 남편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머리 묶기 금지령'이 내려졌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게다가 불편하기까지 했다. 풀어헤친 머리가 내려와 시야를 가릴 때면 확 묶어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딸은 '머리를 푼 엄마'를 너무 낯설어했다. 하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머리 묶은 엄마만 보다가 머리 푼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 같았을 것이다.
"엄마, 머리 묶어. 머리 풀면 안 예뻐!"
딸은 원하는 것을 콕 집어 말했다. 나는 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엄마가 지난번에 병원 다녀왔잖아. 알지?"
'견인성 탈모'를 알아들을 리 없는 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다소 심플하게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머리 묶으면 대머리 된대."
그날 이후로 딸은 나의 풀어헤친 머리를 받아들여주었다. 내가 아침에 운동을 하느라 잠깐 머리를 묶고 있는 것을 보면, 딸은 '엄마 머리 풀어! 엄마 대머리 돼!'라며 얼마나 걱정해 주는지 모른다.
잘 가렸을 뿐인데 풍성해보이는 착시현상
그렇게 온 가족이 걱정해 주고 마음 써 준 덕분에 내 이마의 빛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시 풍성해 보이는 머리칼을 보며 속으로 뿌듯함을 감출 수 없다.
요즘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도 반가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거울을 보아도 기분이 괜찮다.아마도 이마의 빛이 마음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날씨도 추워졌겠다, 앞으로 더욱 신경 써서 뚜껑을 잘 닫고 다녀야겠다. 여기서는 만천하에 공개했지만 현실 세계에서 나의 견인성 탈모는 여전히 비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