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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04. 2023

나의 촛불, 우리 엄마

이제는 나눠 밝혀요

홀로 조용히 눈을 뜬 아침. 거실로 나와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이 새 집처럼 깨끗하다. 간밤에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해놓은 것이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꼭 화장실 청소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냉장고를 닦고, 주방 구석구석 손길 닿기 어려운 곳들에 윤을 낸다. 음식을 한 보따리 해오는 것은 당연하고, 가기 전에도 먹을만한 것들을 한 솥 끓여놓고 간다.


아, 알았다. 건강검진을 해도 고지혈증 외에는 특별한 병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엄마가 그토록 야윈 이유를. 엄마는 너무 많이 움직인다. 몸으로 들어가는 칼로리는 적은데, 소비되는 에너지는 너무나 많은 것이다. 사실 엄마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정말 부지런했다. 게다가 책임감도 투철했다. 맡은 것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최고로 잘 해냈다. 그만큼 능력 있었고, 찾는 사람도 많았다.


엄마는 우리 집 가장이기도 했다. 기숙사 외고와 명문 사립대학을 진학해 버린 큰 딸의 학비를 엄마 손으로 전부 벌어서 냈다. 일반 고등학교를 진학한 동생은 그래도 효녀였다. 나중에는 내가 진학한 인문대보다 학비가 비싼 간호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동생의 학비 또한 엄마의 몫이었다. 난 엄마의 그런 사정을 알아서, 이를 악물고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썼던 것이다. 아끼고 아껴서, 다음 스텝은 내 힘으로 밟아내리라. 그리 독하게 아끼고 모았던 것이다.


난 사춘기 때도 그래서 많이 울었다. 엄마는 촛불이냐고 왜 자기 몸을 녹여가면서 자식들을 밝히느냐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게 엄마라고 말했다. 당연한 듯 힘주어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그때는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촛불 같은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삶인가를. 엄마도 당연히 힘들고 아프면 드러누워 내 몸부터 챙기고 싶어 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체중을 절하기 위해 먹는 양을 나 활동량을 늘린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딱 반대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력이 약해 많이 먹지는 못하니, 활동량이라도 줄여보면 어떨까. 한편으로는 활력 넘치게 살아가는 엄마에게 먹는 만큼만 움직이시라고 하면, 오히려 몸져눕게 될까 봐 염려가 되었다. 엄마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맡는 일도 많고, 마음 쓰는 일도 많다. 충전은 조금밖에 안 하면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움직이니, 배터리가 자꾸만 늙어간다.


이제는 불을 나눠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하다. 움직임을 재분배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 해결책이 도대체 왜 실천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어제도 회사 단합대회에서 신경을 쓴 탓인지 머리가 아프다는 내 말에 엄마는 얼른 들어가 일찍 자라고 했다. 나는 또 고분고분 엄마 말씀 잘 듣는 딸이 되어 아이를 맡기고 들어와서 자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반항을 시작해야 한다. 엄마 대신 불을 밝혀야 한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또 다른 불이 켜진다고 해서 꺼질 촛불이 아니다. 내가 엄마 대신 불을 밝히면, 엄마는 아마 아무도 보지 못했던 어둠을 찾아내어 기어코 불을 밝힐 것이다. 엄마가 조금만 천천히 타들어가줬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이었으면. 은은히 오래도록 따뜻했으면. 그럴수록 엄마의 일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 엄마를 자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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