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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03. 2023

41kg 우리 엄마

오래도록 곁에 있어주세요

새벽 네시 반. 실수로 켜진 화장실 환풍기 소리에 잠이 깼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며 잘못 눌렀는지 환풍기 켜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자기 직전까지 남편과 내일 접수할 유치원 우선모집 순위를 이야기하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아, 저거 꺼야 하는데. 그리고 눈을 떠보니 훌쩍 시간이 흘러있었던 것이다.


어제 열두 시 넘어 잠이 들었으므로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눈을 감았다. 한 시간은 더 자야겠어. 그런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웅웅 소리를 내는 환풍기 소리가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다가가 환풍기 스위치를 눌렀다.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침대로 들어와 이불을 덮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41kg.


어제 들은 엄마의 충격적인 몸무게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엄마가 어제 집에 오셨다. 오늘 있을 어린이집 행사에 학부모 참여가 필수인데, 하필 오늘 회사에서 단합대회가 있다. 아침 8시에 회사에서 버스를 타고 경주로 출발하는 일정이라 조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했다. 언제나 구원자는 우리 엄마. 다행히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오셨다. 워낙 먼 길이라 옆에서 차를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쳤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몸으로도 저녁상을 차리셨다. 언제나처럼. 누구의 도움도 없이. 빠르고 간결하게. 부산스럽지 않게. 덕분에 편하게 밥을 먹었다. 마침 대구에 출장일정이 있어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있어 동대구역에 데려다주고 오니 설거지가 말끔하게 되어있고, 엄마가 그 앞에서 싱크대를 닦으며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런 풍경도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했다.  


어린이집 행사의 드레스코드가 '복고풍' 이어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코디를 해주었다. 나에게는 조금 작은 청자켓이 있어 그것을 제안하고, 꽃분홍빛 손수건도 스카프처럼 두르시라고 했다. 엄마는 청-청은 복고풍의 끝판왕이라 부담스럽다고 했다. 엄마가 가져온 옷과 내가 갖고 있는 옷으로 최상의 조합을 찾아나갔다. 드레스룸에서 엄마 방으로 나르는 옷의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 엄마가 속옷만 빼고 옷을 벗었다. 엄마의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엄마는 누구에게도 몸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딸이라 엄마의 몸을 보았다. 엄마는 일부러 멋쩍은 듯 여기저기 앙상하게 드러난 뼈를 내보였다.


"이번에 건강검진 할 때 보니까 몸무게가 41kg 인 것 있지. 여기 봐. 여기가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


엄마가 갈비뼈와 가슴뼈를 드르륵 튕기며 말했다.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울음을 눌렀다. 그냥 엄마랑 그런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엄마가 가져온 옷을 입기로 했다. 41kg인 엄마의 몸에 맞는 옷이 우리 집에는 없었다. '치마에 있는 벚꽃 무늬가 화려해서 완전 복고풍이야!' 맞는 옷이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준비한 옷이 제격이라며 말을 맺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유치원 지원 순위를 결정하러 들어가고, 엄마는 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밤이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가 환풍기 소리에 눈을 뜬 새벽.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41kg. 충격적인 숫자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불속으로 웅크린 몸에 걱정이 자꾸만 덮인다. 마음이 스르르 아파온다. 도저히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염려에 휩싸인 생각은 끝을 모르고 달려 나갔다. 안돼. 이불속에서 나도 모르게 좌우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몸을 일으켰다. 잠도 오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어둠 속에서 그냥 나와버렸다. 그리곤 내려앉은 마음으로 기껏해야 글이나 쓰는 나.


엄마가 오래도록 건강한 모습으로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간절한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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