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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Mar 19. 2024

임산부 배려석, 앉아도 될까요?

'임산부 전용석'이 될 수 없다면

이른 아침, 단톡방에 질문이 하나 올라왔다.


"지하철에 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임산부 배려석이었어요. 둘러보니 임산부는 없어 보였고, 몇몇 젊은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실 건가요?"


배려이고, 무언의 규칙이고, 질서이고, 약속이기 때문에 앉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눈에 보여도 없는 자리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엿보이는 시간이었다.  


얼마 후, 질문하신 분이 답변을 올렸다.


"저는 배려가 없고 무언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었군요."




나의 임신기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 사무실이 '대중교통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뚱뚱한 배를 자동차에 욱여넣고 직접 운전을 해서 출근을 했다.  시절에는 원숭이처럼 긴 팔을 가진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만삭 때까지 핸들을 손에 쥘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가장 힘든 순서는 '운전이 다 끝났을 때' 찾아오곤 했다. 부가 공간이 넉넉지 않은 곳에 주차를 하게 되면, 꼼짝없이 차 안에 갇히는 신세가 다. 그래서 주차장에 핑크빛으로 칠해 둔 자리를 보면 너무나 반가웠다. 입구 바로 앞이라서가 아니라, 자리가 넓어서 걱정 없이 문을 열고 몸을 꺼낼 수 있어서다.




임신한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분홍색 자리를 보면 반갑다.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우선권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리를 활용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사연이야 다양하겠지만 결국은 한 가지 근본적인 원인으로 귀결된다. '자리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첫째로, 누가 앉아있기 때문에 자리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다. 가장 흔한 사연이다. 아무리 봐도 가임기 여성일 것 같지 않은 사람(ex. 남성, 노인여성 등)이 앉아 있을 때는 속이 끓어도 말을 못 한다. 잠깐 앉아있다가 비켜줄 마음이었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임산부를 찾았을 텐데,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거나 아예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외모로 봐서 가임기 여성인 경우에는 그나마 낫다. 임산부 배지가 없더라도 '나와 동병상련하는 처지이겠거니.'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아예 물리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빽빽하다. 내 몸 하나 넣을 공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인파에 밀려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릴 수만 있다면 성공일 지경이다. 이런 경우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가까이 다가갈 엄두조차 낼 수 없다. 키 큰 남성들로 숲을 이룬 출퇴근길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셋째로, 심리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경우다.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면 '배려석'이지 '전용석'이 아니므로, 양보를 받으면 감사한 일이지 내놓으라는 태도는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늘 등장한다. 임신이 벼슬인 줄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과연 내가 앉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 검열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임신을 하면 몸이 평소 같지 않으니 '배려'를 받는 것이라면, 나보다 더 배려받을만한 컨디션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센서등'을 제안한다. 서로가 무안하지 않은, 멀리서도 잘 보이는 불빛 말이다. 하차벨처럼 생긴 작은 센서등의 부착 위치는 사람숲 보다 더 높은 곳이 좋겠다. 임산부 배려석이 마침 문 쪽에 위치하고 자리 앞에 기둥이 있으니, 기둥 높은 쪽에 붙이면 멀리서도 잘 보일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자리가 비어 있을 때는, 예를 들어 센서등이 파란색으로 표시된다. 이럴 때는 누구나 앉을 있다. 자리에 앉아도 파란색이 그대로 유지된다. 주변에 임산부가 없는데도 굳이 자리를 비워두는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임산부에게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임산부 배지 대신에 리모컨을 배부한다. 리모컨으로는 임산부 배려석을 찜할 수 있다. 대중교통에 탑승해서 파란색 불빛을 보면 리모컨을 눌러 센서를 노란색으로 바꾼다. 주위 사람들은 노란색 불빛을 보고 임산부가 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혹시 앉아있던 사람이 있다면 알아차리고 자리를 양보해 줄 수 있다.  


임산부가 자리에 앉으면 분홍색으로 불빛이 바뀐다. 리모컨에 부착된 센서가 작동하거나, 착석 버튼을 눌러 표시해 주면 되겠다. 그렇다면 그 자리는 배려석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모두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임산부가 탑승하더라도 자리가 보존된다. 만약 [임산부 배려석 점유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앱이 있다면 탑승하기 전에 점유현황을 볼 수 있어 분산하여 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뜬구름 잡는 제안일 수 있다. 내가 잘 모르는 기술적인 부분이야 똑똑한 박사님들이 해결해 주시겠지만, 다른 문제들도 다.


임신기 동안 리모컨을 쓰다가 과연 제  반납할 것인가? 반납률이 저조할 것을 예상해서 9개월 뒤에 저절로 작동이 정지되도록 만들 수 있는가? 타인에게 리모컨을 빌려주는 문제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깜박하고 리모컨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면? 혹시 임산부 리모컨이 거래된다면?


엇보다, 임산부 배려석에 '이렇게까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오늘 아침 단톡방에 질문을 올리신 분을 비롯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려가 없고 무언의 규칙을 어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무엇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인지 몰라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도입된 지 15년이 되었는데도 어떤 것이 옳은 행동인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무언의 규칙'을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해야 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임신/출산/육아기를 겪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니, 대중교통의 임산부 배려석에 예산을 쓰는 것은 할만한 투자이지 않을까?


여기 쓴다고 님들의 귀에 내 제안이 들어갈리는 없지만, 굳이 나의 간단한 아이디어를 글로 꺼내 정리해 본다. 엇이 배려인지 쉽게 알아차리고, 올바로 실천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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