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영화 본 적 있으세요?
나의 첫 번째 '혼(자)영(화)' 도전기
난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배짱이 부족했다. 엄마가 점심으로 짜장면 시켜 먹으라며 용돈을 놔두시고 외출하신 날이면, 전화로 주문하는 것도 어려워해서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주문을 도맡아 했다. 미용실도 혼자 가기가 무서웠다. 드세 보이는 미용사 언니들을 볼 때마다 왠지 주눅이 들어서 동생을 꼬셔서 같이 다녔다. 어쩌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가게 되면 콜라를 리필하고 싶어도 더 달라는 말을 못 해서 참고 오곤 했다.
그런 내가 중학교 2학년쯤,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싶다는 큰 꿈을 품게 되었다. 당시 영화관에는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가 상영되고 있었다. 내가 졸업한 곡선중학교는 수원 버스터미널에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고, 버스터미널에는 메가박스가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며칠 전부터 영화 시간표를 확인하여 날짜를 정했고, 용돈을 모아 티켓값도 마련했다.
드디어 디데이. 수업이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정도의 거리라 다행히 생각해 둔 영화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도착했다. 그 당시에는 앱이나 키오스크를 통해 예매하는 시스템이 없고 무조건 직원에게 표를 사야 했다. 소심한 나는 당연히 가족 혹은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내가 직접 창구에서 표를 구매한 경험이 없었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귀동냥으로 다른 사람들의 주문 패턴을 익혔다. 무슨 영화를 볼 것인지, 몇 장이 필요한지 요청하면 계산을 하고 표를 주는 방식이었다.
몇 차례의 시뮬레이션을 하는 동안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은 익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것이 곧 질문임을 직감한 나는 머릿속으로 줄곧 연습해 온 첫마디를 꺼냈다. 기특하게도 꽤나 무심하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캐리비안베이 한 장이요."
"..... 예?????"
"(더욱 힘주어) 캐리비안베이 한 장이요."
"..... 아 캐리비안의 해적이요?"
"..... 네."
젠장. 캐리비안베이라니. 누가 수영하러 왔냐고. 창피함이 몰려오는 얼굴 위로 직원의 추가 질문이 떨어졌다.
"몇 장 드릴까요?"
"한 장 주세요."
"네? 한 장이요?"
영화 이름을 잘못 말하는 실수에 마음이 쪼그라들어 목소리가 잘 안 들렸는지, 아니면 두 장을 사 가는 일이 보통인데 한 장을 달라는 것이 특이해서 그랬는지, 직원은 정말 한 장이냐며 되물었다.
"..... 아니에요."
후다닥. 뭐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에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 길로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