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
그런데, 꼭 결실이 있어야 하나?
70대의 윤숙은 호텔에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매일 로비에 앉아 글을 쓰며 사람 구경을 하며 때론 시답잖은 말을 건넨다. 이런 윤숙은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친철하며 다른 누군가에겐 무례하고 귀찮은 존재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윤숙에게 친절하고 다른 이는 무례하다.
연극 <밤에 먹은 무화과>는 신효진 작가가 6년 전에 전철에서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그를 부를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하고 ‘저기요’라고 부르며 시작된 작품이다. 작가는 존재성이 빠진 ‘저기요’하는 호칭으로 불릴지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바로 그날 작가를 스쳐간 사람들, 맺어지지 않고 맺을 수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윤숙과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형상화되었다.
윤숙은 부모님 등에 업혀 북에서 내려왔고 88 올림픽을 전후로 호텔 룩셈부르(구 럭셔리)에서 11년간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모은 돈으로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이 호텔에서 머물며 소설을 쓰는 비혼의 노인 여성이기도 하다. 그는 이 로비에서 입양된 미국인 젊은 남자, 결혼을 포기하고 싱글 웨딩을 하는 젊은 여성들, 아이를 잃은 엄마, 무례한 중년 남자 등 다양한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윤숙의 이런 사소한 대화 시도는 한없이 공허하고 쓸쓸하다.
나른하고 한가하고 조용한 호텔의 로비처럼 처음 윤숙의 등장과 움직임은 지루하다. 윤숙이 말을 걸고 관심을 보이며 무대는 역동적이 된다. 그러나 결코 경쾌하진 않다. 딱히 줄거리랄 것이 없는 이야기는 허공에 뿌려지는 듯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들고 우리의 관계도 죽음도 이렇게 공허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며 극에 몰입하고 윤숙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되기도 한다.
지루할 듯한 이야기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조용하지만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연출 그리고 글맛이 느껴지는 희곡으로 몰입도가 상당하다. 내가 느낀 이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선뜻 정리하기 어려웠다.
이래은 연출은 어느 날 일본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인생은 외롭죠. 외로워도 꿋꿋이 살아야지. 힘내요.”라고 자기에게 말을 하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 스쳐지나도 이상할 것 없는 엮임과 인사 같은 정서를 담았단다.
극은 파티로 끝난다. 그 파티의 주최는 뚜렷하지 않다. 우리 삶은 그대로 각자의 파티일 테니 파티의 주최는 나 자신이다. 내 곁은 스쳐간 많은 이들 중 이 파티에 나는 누굴 부를 것인가? 연극이 아니었다면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다.
신효진 작
이래은 연출
백현주 남동진 류경인 김의태 송민규 이미라 양대은 경지은 백소정
국립정동극장 세실 창작 lng 작품
극단 달과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