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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매듭 Jan 19. 2024

굿바이 '대한민국'

소멸국가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중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들리는 소식. 대한민국의 출생률 '최저(갱신)', 'OECD 자살률 1위'

우리나라는 점차 소멸하기 시작한다.

아니 시작된 지는 이미 꽤 되었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몇 년 전부터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빠르게 심화되어 다가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고 '생존'하는 것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 아닌

'풍요'에 더 많은 가치를 둚으로써 나눔과 베풂이 넘쳐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지금만큼 풍요로운 삶은 누리지 못하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순간에 집중하며 오롯이 본인의 삶에 충실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마지막 '낭만'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대한민국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해외에서의 관광도 늘고,

우리나라에 입국하게 되는 해외국적인들 또한 늘어가는 추세이다.


덤으로 SNS(인스타, 유튜브, 틱톡 등)의 유입으로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됨으로써 선망의 시선과 동시에 질투와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과포화된 정보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때로는 쉽게 선동당하기도 하고 거짓된 정보를

진실된 정보로 오해하여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지금의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홀로 외롭지 않게 살기에는 너무 좋은 시대가 되었다.

어플로 간단하게 음식 배달, 인터넷만 있으면 여러 가지 즐길거리,

핸드폰만 있으면 대부분의 것들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핸드폰에 의존도도 매우 높아지고,

많은 정보들 중에서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만을 찾다 보니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생각을 정리하는 그런 '정적(靜的)'인 행위는

아마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예전에 썼던 편지를 생각해 보면 글 마디마다 고심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또 그 구절에 많은 정성을 담았었다.


그렇기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했으며 다시금 꺼내보아 읽어보아도

그때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나는 '아날로그의 마지막'과 '디지털의 시작'을 겪은

운이 좋은 두 시대를 공존하여 겪은 케이스이다.


어쩌면 내가 그때를 그리워하는 건, 우리 모두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습성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조금은, 아니 어쩌면 지금에 비해 많은 것이 불편하고 느렸지만 그렇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의 고생이 나중엔 추억으로 남는다'

어쩌면 다른 날과 같이 별다른 일없이 지나간 날은 기억에 남진 않지만,

조금은 힘들고 고생했던 그 당시엔 겪고 싶지 않던 일들이 지나고 나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날 말이다. (어쩌면 내게 그런 날들은 지나간 듯싶다.)


그래서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면

1. 누군가 내게 꿈을 물어보았을 때 내가 주체가 되어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고심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이 '유튜버'라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좀 더 쉽게 돈을 벌거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이 꿈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2.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은 워낙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젊은이들도 어떤 게 이성의 호감의 표시인지, 거절의 표시인지

쉽게 캐치하여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아닌 내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붓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3.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누군가를 돕는 일에 앞장섰던 미덕이 풍습이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현재는 누군가를 돕는 간단한 선의조차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게 안타깝기도 하다.


(중략)


이러한 부분들이 바뀐 게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고,

삶에 대해 본인들이 세운 가치관으로 보면 손해 볼 것 없는 삶이지만,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는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현재 대한민국 상황.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목적의식(+인생의 동반자)을

찾기 바라며 글을 줄이겠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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