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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Sep 02. 2021

소설. 배짱 있게 썼다.

첫 소설 탈고.

집필기간 : 2020.5.26 - 2021.7.06 (406일)

초고 집필 : 168일.

퇴고, 탈고: 238일.

작성 PR    : 한글 10p.

글자(공백 포함) : 572,821자

원고지 기준: 3,198장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문턱 두 번째에 이르러 드디어 활자의 춤이 멈췄다.

자음과 모음이 뒤섞여 밤낮없이 머릿속을 베고, 찌르고, 난도질했던 등장인물들의

칼의 군무는 수많은 낮과 밤. 심지어 꿈에서도 저돌적으로 맹렬했었다.  


내가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첫 퇴고를 하는 중에 무수히 들었던 생각이었다. 글자가 겹쳐 보이고, 문장은 물 위의 기름띠처럼 녹아들지 못한 채, 제 색깔만 고집하며. 평소 익숙했던 어휘들마저 모니터 안으로 들어오질 않고 버티면서, 온몸의 진을 뺐다.

집필 중에 거의 100만 번쯤은 됐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모든 작가들을 존경한다고 되뇐 적이.

그러나. 끝을 냈다. 그것도 대충과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첫 단어를 입력할 때의 마음으로

-끝.-라는 종지부를 찍었다. 애썼다. 그 순간 내게 해 준 첫마디였다.


20권의 가제본을 자비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렸다. 물론 그들 중에는 아내와 두 딸도 포함되었고, 지금까지 13명의 피드백을 받았다. 나머지 7명은 단 한 번의 재촉을 않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여성 4명. 남성 16명

13명의 피드백. 두 딸이 20대 중반이고, 그 외 40대 3명. 50대가 8명이었다.

그중 둘째 아이의 반응에 가장 크게 웃고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

출간 제안서를 작성하는 중엔 둘째 아이가 중 후반 정도, 미처 완독을 하지 못한 때였다.


"여보! 작품 소개를 300자 내외로 무슨 수로 쓰지?"

"짧긴 짧다. 그걸 다 어떻게 줄여?"

"그러게... 글자 수의 0.1%로도 안되게, 앞뒤 다 자르고. 답답하네."

"대부분 출판사에선 투고가 많아 다 보질 않는다며? 책에도 쓰여 있더라. 짧으면 1분. 길면 3분 정도 본다고."

"햐! 답답하구먼. 그러니까, 주인공이 산행을 하다가 (블라, 블라, 블라...) 여기선 갑자기 이렇게 캐릭터가 바뀌고, (블라, 블라, 블라.) 또 이 대목부터 이렇게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중간중간 다 자르고 어떻게 이걸 설명 하지?"

그때였다. 거실에 있던 둘째 아이가 귀를 막고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던진 말.

"아빠! 스포 하지 마! 나, 아직 거기까지 안 읽었단 말이야! 하지 마."


우습게 들리기도, 그럴 수 있다고도 하겠지만, 딸아이를 아는 아내와 나는 눈이 커질 때로 커졌었다.

그 녀석은 우리 가족 중에 책과의 거리가  가장 었기 때문이다. 문자 향만으로 충분히 숙면에 빠져드는 이쁜 녀석이었기에....

그런 녀석이 작품 전체 줄거리를 말하는 도중에 귀를 막고 뛰어 들어갔으니, 제깐에는 드라마의 결말을 미리 알게 되는 허망함이 싫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심 첫 성취감을 느낀 때였다.


피드백을 준 13명 모두의 공통점은 두 가지였다.


페이지가 재밌게 술술 넘어간다는 것.
읽는 중에 장면이 함께 연상된다는 것.


지인들이란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은 특히 이 두 가지를 피드백에 80% 이상을 할애해 말해줬다.

고맙지만, 경계해야 할 말이었다. 나에겐 지인이란 관계가 주는 달콤함에 빠질 독이 될 수 있으니.


각설하고.

출간 제안서를 아직 완성 못하고 있다. 교보문고를 방문해 각 출판사를 조사도 해보고,

제안서 쓰는 법이 나온 책을 3권을 구입해 읽어봐도, 이해되고 수긍하지만 진전이 없다.


"이렇게 긴 장편도 썼는데, 그깟 몇 줄에 뭐 그리 애를 태워? 급하게 생각 말고, 천천히. 쓰고 싶을 때 써."

아내의 핀잔 아닌 핀잔에 그저 웃긴 하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인연이 닿길 바란다.

누군가는 웃는 미소에 끌리고, 어떤 이는 걷는 기운에 끌리기도 한다.

땀을 흘리는 모습에 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분함에 끌리기도 하는 것처럼. 인연은 셀 수없이 많다.


지금껏 끌어왔던 출간 제안서는 아마도 이번 달 어느 날이면, 날 생선의 파닥 거림으로 미처 털어내지 못한 물기를 어느 출판사 홈페이지 한 줄을 적실 것이다. 그때. 담당자의 콧 끝에 비린내가 아닌 바다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번잡스럽지 않은 싱싱함으로 닿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다음 소설로 구상한 3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할 준비를 해야겠다.

그동안의 집필했던 소설의 잔재를 걷어 내는 날. 그날은 두 번째 소설의 첫 문장이 입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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