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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May 01. 2024

창업일기 3장 1화

험난한 출사표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엘니뇨 현상에 더해 지구가 지쳐가는 듯하였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빙하가 녹고 있고, 북극곰이 얼음 위에 둥둥 떠있는 광고에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기에 바빴으며, 연일 코로나로 도배되고 있는 TV 뉴스를 점점 지겨워하기 시작하였다.

마스크가 갑갑한 여름이었다.


휴가철이 시작되자 다들 35도를 넘는 무더위를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났다.


코로나19의 위중한 시기였지만 백신을 맞고 알게 모르게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아직 한여름임에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P는 어느 여름날 하얀 마스크를 쓰고 검정 야구 모자를 눌러쓴 채 저녁의 누그러진 기운을 이용하여 동네 한 바퀴를 산보하고 있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항상 그가 즐겨 다니는 천변길을 따라 약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남한산성 자락의 밑동을 향했을 때 문득 전화가 걸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춰 섰다.

일본에 있는 지인 D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내용인즉슨 하루라도 빨리 사업체를 만들어서 일본의 양성자치료기를 개발한 스타트업 기업과 힘을 합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그것은 곧 법인을 만들라는 의미였는데 P는 아직 현역이므로 P가 대표이사가 되어 기업을 만드는 것은 준법경영 위반이어서 불가능하다고 통보하였다.


하지만 D는 그런 경우에 부인을 대표로 내세우면 법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한일 합작법인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일본에서 자본을 어느 정도 댈 터이니 한국에서도 자본을 대어 일반적인 개인기업이 아닌 법인사업체를 만들자는 이야기였는데, 그 법인은 단순한 한국법인이 아닌 한일 합작법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거대 규모에 거액의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데 있어서, 법인을 만들지 않고서는 이런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일본에서 개발하고 있는 양성자치료기라고 하는 것은 병원에서 사용되는 의료기기 중에서도 가장 고가의 의료장비였다.


보통 비싼 방사선치료기라 할지라도 100억 원을 넘지 않았으나, 갠트리 2대에 카우치 하나 그리고 가속기 하나를 포함한 양성자치료기 한 세트를 병원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 돈으로도 수백억 원 이상이 드는 상황에서, 자그마한 기업으로 대학병원에 어필하고 신뢰를 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P는 일단 법인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에 직면하여 산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상의하였다.


P의 아내는 특별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전업주부였기에 이 제안에 대하여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본인이 대표이사가 되고,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을 져야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부담을 느낀다고 하였다.


어쨌든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법인을 출범하여야 는데 한일 합작법인을 처음부터 출범하는 것이 쉬운 일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P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그의 집에서 가까운 법무사를 찾아내었다.


그 법무사는 외국계 법인체와 관련된 업무를 주로 한다는 광고를 내걸고 있었는데 P가 전화를 걸어 약속을 하고 찾아가 보니 생각보다 젊고 끔한 사였다.


30평쯤 되어 보이는 잘 정리된 사무실에서 반갑게 P를 맞이한 그는 우선 한국 법인을 먼저 출범시킨 이후에 일본 측에서 자본금을 투자하여 합작법인을 만드는 것이 순서라는 노하우를 제시하였다.


즉 처음부터 일본 측과 합자하여 한일 합작 법인을 만드는 것은 요청 서류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리며 심사를 받아야 되는 등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P는 법무사의 말을 참고하여 우선 한국 법인으로 출범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고, 법인을 만들 것을 제안한 D에게 그의 회사 영문명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고, 뒤에 한국이란 의미의 코리아를 붙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보았다.


처음에 D는 약간 주저하는 모습이었지만 P의 입장에서는 보호막이 필요하였으므로, 이미 세워진 일본 기업의 한국 합작법인임을 내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D는 일주일간 내부협의 후에 자기네 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뒤에 코리아를 붙여서 한일 합작법인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D의 회사에서 일정 부분 자본금을 출자해 주겠다고 하였다.


다만 먼저 한국 법인을 출범한 이후에, 자본금의 규모에 대해서는 다시 상의해 보자고 하였다.


아마도 이렇게 회사명이나 출자 안건과 같은 중대사안대표이사인 D가 혼자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내부 이사회에서 승인절차를 밟아 정하는 모양이었다.


P는 다시 법무사를 찾아가서 국내 법인을 발족시키는데 필요한 서류 요건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중에서 주주와 대표이사 그리고 사업장 등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상담하였다.


인터넷에도 여러 경로로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참고하여 회사 립 요건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법무사에게 법인 설립에 관련된 모든 해당 자료를 작성하여 제공하고, 법인 탄생을 의뢰하였다.


자료 제출 후 일주일 뒤에 법인 등기부등본이 발행되었고 P는 그것을 가지고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세무서에 찾아가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사람으로 말하면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당장 사무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사업장의 주소지는 P의 집 주소로 하였다.


그리고 법인이 설립되었기 때문에 법인통장과 법인카드도 만들어야 했는데, 주거래 은행은 집에서 가까운 S은행으로 정하였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려면 여러 서류를 확보하러 구청에 가거나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 찾아가서 물어보고 관련서류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 무렵 한국 법인이 신설되었고 사업자등록증이 나왔으며 은행의 법인창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P는 은행에 가서 순서대기표를 누를 때마다 법인이라는 항목을 봐왔었는데, 드디어 법인으로 대기표를 받아 은행직원과 상담을 나누게 되었다.


이번에 설립된 법인을 모태로 하여, 일본에서 자본을 출자한 형태로 합작법인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자본금이 들어오는 배경에 대한 많은 증빙서류 제출이 요구되었다.


특히 D가 속한 일본 법인의 대주주와 관련된 개인적인 신상 서류도 필요하다고 하여 P는 분주히 일본 측과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합작법인을 설립하느라 추석도 제대로 쇠지 못하였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된 일본에서 대주주의 자료를 요청해서 받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D가 중재하여 가까스로 입수할 수 있었다.


일본 측에서는 법인주주명부와 대주주 개인의 서류(우리 식으로 말하면 주민등록등본에 인감증명서 등등), 거기에 소유 주식의 증명서나 비율 증명, 법인과 관련된 모든 서류(일본법인등기부등본, 일본법인인감증명서, 공증위임장 등)에 공증까지 요구하는 P와 한국 측 은행에 넌더리를 내었다.


그만큼 법인과 개인에 대해서 요구하는 서류 내용이 구체적이었고, 모든 서류는 변호사의 공증절차를 거쳐서 원본을 받아야 했다.


여러 서류를 만들고 준비해서 간신히 은행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 

다섯 번 정도 법인 창구에 방문하였다.

이렇게 은행의 증빙서류를 포함하여 해당서류 요건을 종합하여 법무사에게 전달하니 즉시 수속을 밟아 주었다.


그해 가을 드디어 한일 합작법인으로 다시 변신을 하여 회사는 재탄생하게 되었다.


P는 일단 집 주소를 사업장으로 한 명함도 제작하였으며, 본인을 CEO로 명명하였다. 아직은 재직 중이어서 조심스럽게 일을 추진해 보기로 하였지만, 사실상 당장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명함에 관한 아이디어는 D의 명함을 참고하여 P가 직접 디자인을 고안하였는데,  양성자치료기를 개발한 회사의 고유 로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도 받아 내었다.


법인이 설립되자 양성자치료기를 개발하고 있던 일본의 스타트업 기업에서는 상호 업무 협력계약을 체결하자고 하였다.


P의 회사는 아직 작은 형태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본의 두 회사가(D의 회사와 스타트업 벤처기업) 먼저 업무계약을 맺는 것이 나아 보였다.


결국 D의 회사가 스타트업 기업이 개발 중인 양성자치료기에 대해 일본과 한국에서의 마케팅과 판촉에 대한 권한을 갖는 형태로 우선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D의 회사는, 한국에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P의 회사에 따로 맡기기로 하는 별도 계약을 맺고 비즈니스를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어찌 보면 D와 P의 회사관계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로 설정되었다.


다행히 코로나19 시기였기에 재택근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P는 틈틈이 빈 시간을 이용하여 구청, 동사무소, 세무서, 은행 등을 출입하며 회사의 출범에 수반한 일을 해결해 나갔다.


P의 회사는 헬스케어 컨설팅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우선은 양성자치료기를 한국에 도입하는 사업 첫 번째 주안점으로 둔 어설픈 모습으로 닻을 올렸다.


두두 둥둥둥!!!  

북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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