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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Jun 13. 2024

한 여름밤의 고독

열대야

   남자는 아직도 젊은 시절 음주습관대로 참이슬 2병을 들이켠다. 열대야의 한 여름밤, 소주가 혈압을 급상승시킨다.


   억지로 토기(吐氣)를 참으며 익숙한 강남역 빌딩의 화장실에 들른다. 경비아저씨가 힐끗 쳐다보며 위아래를 훑어본다. 지나가던 잡상인을 보는 듯한 눈초리가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시외버스에 카드를 대고 올라타니 이미 만석이다. '좌석 없음' 안내글자도 없던 터에 운전기사에게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들은 척도 않는다.


   간신히 비집고 올랐지만 남자보다 나이 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피서를 떠났겠거니 하고 생각하면서 옆좌석을 보는데 젊은 두 남녀가 부둥켜안고 난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농도 짙은 애정행각에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고 외면하는 분위기다. 요즘의 개인주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걸까?


   남자는 슬그머니 사자갈기를 곧추세우고 한마디 하려다 조용히 꼬리를 내린다. 술 취한 남자의 말 한마디는 추태로 취급될 터. 외려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 나이 먹도록 기사 딸린 자가용 하나 없느냐는 주변의 눈초리를 애써 외면한다. 건강을 위해 버스 좀 타기로서니 눈칫밥을 먹어서야...


   부릉부릉,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에 몸을 맡기자 차창에 도로가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술 취한 탓인가? 


   그 와중에 열심히 포털사이트 기사에 댓글까지 읽어본다. '그래, 기사에 뭐라 댓글을 올렸나 보자.' 메인 기사보다 댓글이 기발하고 정확하게 현상을 꼬집고 있었다.


   어느덧 사륜구동차가 허덕거리며 목적지에 다다르자 간신히 지상에 강림한다. 정류장부터 집까지 1km 걷는 길이 왜 이리 멀기만 한 지... 순식간에 혈압이 오르는 열대야 무더위에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갑자기 갈지자걸음이 된다.


   걷다가 나훈아의 '모정의 세월'을 흥얼거리며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린다. '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듯~'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이 가사를 읊조리면 등골이 서늘해지고, 엄마가 그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네... 연이은 '머나먼 고향'에서는 악을 써본다.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간신히 도착한 마이홈에는 이어폰을 끼고서 눈인사도 외면하는 공주님이 앉아있다. 갑자기 서러워진 남자는 버스에서 참았던 분노를 터뜨린다.


   "야! 너는 아빠한테 인사도 안 하냐?" 애꿎은 딸은 아빠에게, "또 술 마셨어요? 허구한 날...  쯧쯧... 얼른 씻고 주무시기나 하세요!" 한마디로 힐난한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온다.


   하얀 조가비가, 밀려오는 포말을 마시고 있는 광경이 어른거린다. 조가비는 남자이고 포말은 맥주거품일까?


   서둘러 샤워하니 벌써 자정이다. 너무나 덥다 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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