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에 카드를 대고 올라타니 이미 만석이다. '좌석 없음' 안내글자도 없던 터에 운전기사에게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들은 척도 않는다.
간신히 비집고 올랐지만 남자보다 나이 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피서를 떠났겠거니 하고 생각하면서 옆좌석을 보는데 젊은 두 남녀가 부둥켜안고 난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농도 짙은 애정행각에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고 외면하는 분위기다. 요즘의 개인주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걸까?
남자는 슬그머니 사자갈기를 곧추세우고 한마디 하려다 조용히 꼬리를 내린다. 술 취한 남자의 말 한마디는 추태로 취급될 터. 외려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 나이 먹도록 기사 딸린 자가용 하나 없느냐는 주변의 눈초리를 애써 외면한다. 건강을 위해 버스 좀 타기로서니 눈칫밥을 먹어서야...
부릉부릉,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에 몸을 맡기자 차창에 도로가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술 취한 탓인가?
그 와중에 열심히 포털사이트 기사에 댓글까지 읽어본다. '그래, 이 기사에 뭐라 댓글을 올렸나 보자.' 메인 기사보다 댓글이 더 기발하고 정확하게 현상을 꼬집고 있었다.
어느덧 사륜구동차가 허덕거리며 목적지에 다다르자 간신히 지상에 강림한다. 정류장부터 집까지 1km 걷는 길이 왜 이리 멀기만 한 지... 순식간에 혈압이 오르는 열대야 무더위에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갑자기 갈지자걸음이 된다.
걷다가 나훈아의 '모정의 세월'을 흥얼거리며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린다. '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듯~' '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이 가사를 읊조리면 등골이 서늘해지고, 엄마가 그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네... 연이은 '머나먼 고향'에서는 악을 써본다.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간신히 도착한 마이홈에는 이어폰을 끼고서 눈인사도 외면하는 공주님이 앉아있다. 갑자기 서러워진 남자는 버스에서 참았던 분노를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