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사랑이 거봉 Jun 13. 2024

한 여름밤의 고독

열대야

남자는 아직도 젊은 시절 음주습관대로 참이슬 2병을 깐다.

열대야의 한 여름밤, 소주가 혈압을 급상승시킨다.


남자는 억지로 토기를 참으며 익숙한 강남역 빌딩의 화장실을 들른다.

경비아저씨가 힐끗 쳐다보며 위아래를 훑어본다.

지나가던 잡상인 취급한다.


시외버스에 카드를 대고 올라타니 이미 만석이다.

좌석 없음 표식도 없던 터에 운전기사에게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기사는 들은 척도 않는다.


간신히 비집고 올랐지만 남자보다 어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피서 갔겠거니 위안 삼고 옆좌석을 보는데 젊은 두 남녀가 부둥켜안고 난리가 아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외면한다.


슬그머니 사자갈기 곧추세우고 한마디 하려다 조용히 꼬리를 내린다.

술 취한 남자의 말 한마디는 추태로 취급될 터.


그 나이 먹도록 기사 딸린 자가용도 없냐는 눈초리를 애써 외면한다.

건강을 위해 버스 좀 타기로서니 눈칫밥을 먹어서야...


부릉부릉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에 몸을 맡기고 차창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아가며 그 사이에도 열심히 밴드의 댓글을 읽는다.

그래 오늘은 누가 뭐라 댓글을 올렸나 보자.

야구? 얼씨구 한 번은 질 수도 있지 뭐...


어느덧 사륜구동차가 허덕거리며 목적지에 다다르자 간신히 지상에 강림한다.

정류장부터 집까지 1킬로 걷는 길이 왜 이리 멀기만 한 지..

혈압 오르는 열대야에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갑자기 발걸음이 갈지자가 된다.


나훈아의 '모정의 세월'을 흥얼거리며 엄마를 떠올린다.

'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듯~'


'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이 대목을 읊조리면 좀 서늘해지기도 하고, 엄마가 그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네...


연이은 '머나먼 고향'에서는 악을 써본다.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간신히 도착한 마이홈에는 이어폰만 끼고 눈인사도 외면하는 공주님이 앉아있고,

갑자기 서러워진 남자는 버스에서 참았던 분노를 터뜨린다.


"야! 너는 아빠한테 인사도 안 하냐?"

애꿎은 딸은 아빠에게,

"또 술 마셨어요? 허구한 날...  쯧쯧... 얼른 씻고 주무시기나 하세요!"

한마디로 힐난한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온다.


하얀 조가비가 밀려오는 포말을 마시고 있는 광경이 어른거린다.

조가비는 남자이고 포말은 맥주거품인가?


서둘러 샤워하니 자정이다.

아 덥다 더워~~

열흘만 참자...

작가의 이전글 오른손잡이가 왼손 사용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