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공감의 장
고교 동창회에서 작년에 출범한 57노송포럼을 돌아보는 시간은 언제나 심장을 뛰게 한다. 별칭 3학년 13반으로 불리는 이 모임은, 축적된 경험과 삶의 지혜를 나누는 '공유포럼'이다. 12반(이과 8반, 문과 4반)으로 구성되었던 같은 해 고등학교 입학 동기들은 이제 통섭의 지적 교류를 시작하였다.
매달 셋째 주 수요일 저녁이면 삼성역 근처 미디어 기업을 장소로 제공해 준 친구의 배려로, 너른 사무실에 모여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하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폭넓은 주제들 속에서, 우리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삶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된다.
- 다양했던 주제, 깊었던 대화
막 닻을 올린 2024년의 포럼은 정말 다채로웠다.
첫 포럼에서는 "미래 TV 광고의 변화"를 주제로 새로운 광고 기법과 기술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어지는 주제는 "브랜드 속 신화 이야기"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신화적 상징이 소비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했다.
기술이 삶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한 주제였다. "챗 GPT의 필요성과 활용"은 인공지능 시대의 도구와 미래 전망을 짚어보게 했고, "AI 시대의 HBM 반도체 기술 변화"는 첨단 기술의 발전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보여주었다.
문학과 역사, 예술도 빼놓을 수 없었다. "기녀, 그 신분과 삶, 그리고 문학"은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 속 여성들의 삶과 그들이 문학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즐거운 오페라에의 초대"는 음악을 통해 유럽 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불교 상식"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과학과 건강 분야에서는 "바이오산업과 진단 키트"의 강연에서 증가하는 알레르기 진단법이 흥미를 끌었고, "수학, 과학 난제의 의미와 발전"은 오랜만에 지적 두뇌를 가동하게 만든 강의였다. 내가 발표한 "약 이야기와 60대의 건강 관리"는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건강 문제와 올바른 약 복용법을 다루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환경과 인간의 삶도 빼놓을 수 없었다. "기후 위기, 이누이트 삶과 기후 인권"은 지구의 미래와 인간 존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했고, "오일과 가스의 탐사와 개발, 그리고 해외 자원 개발"은 한정된 자원의 활용법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현대인의 보약, 현대인의 산(山) 이야기"는 자연과 교감하며 건강한 삶을 사는 방법을 공유했다.
마지막으로, 삶과 인간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주제들도 있었다. "정신건강과 나"는 우리 내면의 균형과 치유를 이야기했고, "얼굴 사용 설명서"는 외형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의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는 시간이 되었다.
- 우리가 함께한 이유
57노송포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다. 매번 강의를 시작하기 전 도시락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들은 서로의 생각과 경험이 교차하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곤 했다. 한 명의 발표자가 던진 주제는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20~30명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포럼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지식 교류를 넘어 인간적인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모이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리운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함께 배우며 서로를 격려했다.
- 새해를 맞이하여
57노송포럼이 시작된 지 이제 2년째. 이 포럼은 점점 더 많은 친구들의 지적 호기심과 공감을 이끌어내며 성장하고 있다. 매달 새로운 주제를 기다리며, 앞으로도 이 공간이 단순한 동창회 이상의 의미를 갖기를 바란다.
지식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이 특별한 시간들은 이제 즐거운 기다림의 장이 되었다. 2025년에도 우리는 매달 셋째 주 수요일, 이곳에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건축공간의 철학
1월의 차가운 공기가 도시를 감싸던 저녁,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57노송포럼 장소로 모여들었다. 1월 셋째 주 수요일, 이번 주제는 건축, 그중에서도 건축공간의 철학과 현대 건축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강의를 맡은 친구(이관호 건축사)는 모교 100주년 기념 미래인재생활관의 설계를 담당했던 인물로,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재해석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다.
- 건축의 본질: 형태와 공간
"건축의 본질은 공간입니다." 그의 첫마디가 깊은 울림을 남겼다. 형태에 집착하기보다는 공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살아있는 건축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간은 빛, 구조, 기능, 융통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특히 그는 빛의 역할을 강조하며 노트르담 성당, 롱샹 성당,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등 세계적 건축물들을 사례로 들었다. "빛은 단순히 공간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간의 생명을 부여한다."라는 말은 마치 건축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구조물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 서양과 동양 건축의 만남
그는 서양의 벽식 구조와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차이를 설명하며, 문화적 배경과 자연환경이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했다. 동양의 건축은 땅이 무르고,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삶의 양식 속에서 발전했다. 기단과 처마, 주춧돌 같은 요소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환경에 맞춰진 형태였다. 반면 서양의 건축은 기하학과 수학적 사고방식으로 발전했고, 신(神) 중심의 고딕 양식에서 인본주의적 르네상스 양식으로 변화해 갔다.
이 두 건축 세계의 만남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 건축의 유연성: 변화를 담는 그릇
건축공간의 유연성은 현대 건축의 필수 요소임을 그는 강조했다. 르코르뷔제의 돔이노(Dom-ino) 시스템과 미스반데어 로에의 "Less is more" 철학은 건축의 간결함과 융통성을 상징했다. 그는 건축물도 삶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며, 건축이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지 통찰을 나눴다.
- 공간, 삶, 그리고 철학
강연의 마지막은 철학적 통찰로 채워졌다. 건축은 단순히 구조물이 아니라, 공간과 질서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담는 예술이다. 강사는 중용의 구절과 도덕경, 그리고 주역의 사상을 인용하며, 건축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공간이 곧 생명을 불어넣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라는 말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 그리운 얼굴과 나누는 지적 대화
57노송포럼은 단순한 동창회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그리운 얼굴을 보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이 날의 강연도 단순한 건축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철학,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시간이 되었다.
다가올 포럼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통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매달 셋째 주 수요일, 57노송포럼은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지적 영감을 더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