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의 작은 병원에서
작고하신 고숙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침 일찍 장지로 떠나는 고모와 슬픔에 잠긴 친지들을 뒤로한 채, 이제는 뵙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 아버지도 오랜만에 찾아뵙고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짧은 1박 2일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 접어들자마자 편두통이 서서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시달리고 있던 두통이었지만, 무더위와 부족한 수면이 기름을 부었나 보다. 햇볕은 하얗게 눈부셨고, 도로 위 열기는 금세 차량 내부로 스며들었다.
운전 중엔 잠깐 눈을 감는 것도 어렵다. 통증은 침을 삼키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짙어졌고, 결국 점심시간을 핑계 삼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처음엔 입장거봉포도휴게소를 들릴까 했지만, 아내의 권유로 안성휴게소까지 더 달렸다. 휴게소는 전국을 할퀸 폭우 탓인지 예상보다 한산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문구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경기도립 안성휴게소의원 연중무휴.”
순간, ‘설마 진짜 문을 열까’ 싶었다. 일요일, 고속도로 휴게소, 게다가 병원이라니.
의구심을 품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말 문이 열려 있었다.
마침 나는 경기도민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간단한 진료와 진통제였다.
작은 진료실에는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한 분이 계셨다.
문진은 예상보다 꼼꼼했다.
“어지럼증은 없으셨나요?”, “평소 드시던 약은 뭔가요?”, “오늘은 몇 시간 주무셨죠?”
아내가 응급으로 건넨 두통약을 먹은 것에 대해선 가벼운 질책도 들었다.
“그렇게 남의 약을 드시면 안 됩니다. 애정과 복약은 다릅니다.”
혈압은 118에 69, 맥박 87. 숫자는 모두 괜찮았지만, 몸 상태는 말 그대로 ‘기진맥진’에 가까웠다.
진료실 옆 조제실에서 바로 약이 나왔다.
진료비와 약값을 포함해 겨우 8,400원.
아니 이렇게 싸다니!
조제약은 흔히 두통에 처방하는 이부프로펜과 아세트아미노펜을 병용하고, 거기에 위점막 보호를 위해 내가 한국에 도입한 레바미피드 성분, 단 세 가지였다.
그렇게 작고 고요한 진료소에서 받은 처방약은 몇 시간 후 내 머릿속 짙은 안개를 걷어내주었다.
고속도로 한복판, 장례식 여운과 피로에 지친 여름날 오후.
편두통에 짓눌려 잠시 몸 둘 곳을 찾던 나에게 안성휴게소의 작은 병원은 ‘쉼표’ 같은 존재였다.
작은 공간에 간소한 시설이었지만, 그 안엔 분명 누군가를 살피고자 하는 진심이 묻어났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도 그분의 이름을 모른 채, 휴일에 문을 연 병원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전했다.
그저 잠시 거쳐간 환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안성휴게소를 ‘위로가 있는 곳’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무더위 속의 의외의 만남.
그것이 병원일 수도 있고,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는 것을 조용히 배웠다.
더위에 지친 내겐 오아시스 같은 소중한 만남이었다.